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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고집전
2003.12.24 | 조회수 : 55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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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달 우물과 옹연못이 있는 옹진골 옹당촌에 한 사람이 살았으니, 성은 옹가요, 이름은 고집이었다.성미가 매우 괴퍅하여 풍년이 드는 것을 싫어하고, 심술 또한 맹랑하여 매사를 고집으로 버티었다.
살림 형편을 살펴보건대, 석숭의 재물이나 도주공의 드날린 이름이나 위세를 부러워하지 않을 만하였다.앞뜰에는 노적이 쌓여 있고 뒤뜰에는 담장이 높직한데, 울 밑으로는 석가산이 우뚝하다. 석가산 위에 아담한 초당을 지었는데, 네 귀에 풍경이 달렸으매 바람 따라 쟁그렁 맑은 소리 들려오며, 연못 속의 금붕어는 물결 따라 뛰놀았다. 동편 뜨락 모란꽃은 봉오리가 반만 벌어지고, 왜철쭉과 진달래는 활짝 피었더니 춘삼월 모진 바람에 모두 떨어졌으되, 서편 뜨락 앵두꽃은 담장 안에 곱게 피고, 영산홍 자산홍은 바야흐로 한창이요, 매화꽃도 복사꽃도 철을 따라 만발하니 사랑치레가 찬란하였다.

팔작집 기와 지붕에 마루는 어간대청 삼층 난간이 둘려 있고, 세살창의 들장지와 영차에는 안팎걸쇠, 구리사복이 달려 있고, 쌍룡을 새긴 손잡이는 채색도 곱게 반공중에 들떠 있다. 방 안을 들여다보니 별앞닫이에 팔첩 병풍이요, 한녘으로 놋요강, 놋대야를 밀쳐놓았다.

며늘아기는 명주 짜고 딸아기는 수놓으며, 곰배팔이 머슴놈은 삿자리 엮고 앉은뱅이 머슴놈은 방아찧기 바쁘거니와, 팔심당년 늙은 모친은 병들어 누워 있거늘 불효막심 옹고집은 닭 한 마리, 약 한 첩도 봉양을 아니 하고, 조반석죽 겨우 바쳐 남의 구설만 틀어막고 있었다.

불기 없는 냉돌방에 홀로 누운 늙은 어미 섧게 울며 탄식하기를,
"너를 낳아 길러 낼 제 애지중지 보살피며, 보옥같이 귀히 여겨 어르면서 하는 말이 '은자동아, 금자동아, 고이 자란 백옥동아, 천지 만물 일월동아, 아국사랑 간간동아, 하늘같이 어질거라, 땅같이 너릅거라! 금을 준들 너를 사며 은을 준들 너를 사랴? 천생 인간 무가보는 너 하나뿐이로다.' 이같이 사랑하며 너 하나를 키웠거늘, 천지간에 이러한 어미 공을 네 어찌 모르느냐? 옛날에 효자 왕상이는 얼음 속의 잉어를 낚아다가 병든 모친 봉양하였거늘, 그렇지는 못할망정 불효는 면하렷다.!"

불측한 고집이놈, 어미 말에 대꾸하되,
"진시황 같은 이도 만리장성 쌓아놓고, 아방궁을 이룩하여 삼천 궁녀 두루 돌아 찾아들며 천년만년 살고지고 하였으되, 그도 또한 이산에 한분총 무덤 소게 죽어 있고, 백전백승 초패왕도 오강에서 자결하였고, 안연 같은 현학사도 불과 삼십 세에 요절하였거늘 오래 살아 무엇하리? 옛글에 이렀으되 '인간 칠십 고래희라' 하였으니, 팔십이 된 우리 모친 오래 산들 쓸데없데, '오래 살면 욕심이 많아진다.' 하니, 우리 모친 그 뉘라서 단명하랴? 도척같이 몹쓸 놈도 천추에 유명하거늘, 어찌 나를 시비하리요?"

이 놈의 심사 이러한 가운데에, 또한 불교를 업신여겨 허물 없는 중을 보면, 결박하고 귀 뚫기와 어깨 타고 뜸질하기가 일쑤였다. 이 놈의 심보가 이러하니, 옹가집 근처에는 동냥중이 얼씬도 못 하였다.
이 무렵, 저 멀리 월출봉 취암사에 도사 한 분이 있었으니, 그의 높은 술법은 귀신도 감탄할 경지에 이르러 있었다. 하루는 도사가 학대사를 불러 이르기를,
"내 듣건대, 옹당촌에 옹좌수라 하는 놈이 불도를 엽신여겨 중을 보면 원수같이 군다 하니, 네 그 놈을 찾아가서 책망하고 돌아오라."

분부 받고 학대사는 나섰것다. 헌 굴갓 눌러쓰고 마의장삼 걸쳐 입고, 백팔염주 목에 걸고 육환장을 거머짚고허위적허위적 내려오니, 계화는 활짝 피고 산새는 슬피 울며 가는 길을 재촉한다.
노을진 석양녘에 옹가집에 다다르니, 어간대청 너른 집에 네 귀에 풍경 달고, 안팎 중문 솟을대문이 좌우로 활짝 열어젖혔기에, 목탁을 딱딱 치며 권선문을 펼쳐 놓고 염불로 배례할 새,
"천수천안 관자재보살, 주상 전하 만만세, 왕비전하 수만세, 시주 많이 하옵시면 극락 세계로 가오리다.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중문에 기대어서 이 광경을 보던 할미종이 넌지시 이르는 말이,
"노장 노장, 여보 노장,소문도 못 들었소? 우리 댁 좌수님이 춘곤을 못 이기사 초당에서 낮잠이드셨으매, 만일 잠을 깰라치면 동냥은 고사하고 귀 뚫리고 갈 것이니 어서 바삐 돌아가소."
학대사가 대답하되,

'고루거각 큰 집에서 중의 대접이 어찌하여 이러할까? '적악지가에 필유여앙이요, 적선지가에 필유여경이라' 이르나이다. 소승은 영암 월출봉 취암사에 사옵는데, 법당이 퇴락하여 천리길 멀다 않고 귀댁에 왔사오니 황금으로 일천 냥만 시주를 하옵소서."
합장배례하고 다시 목탁을 두드리니, 옹좌수 벌떡 일어나 밀창문을 드르르 밀치면서,
"어찌 그리 요란하냐?"

종놈이 조심조심 여쭈기를,
"문밖에 중이 와서 동냥 달라 하나이다."
옹좌수 발칵 화를 내어 성난 눈알 부라리며, 소리질러 꾸짖기를,
"괘씸하다 이 중놈아! 시주하면 어쩐다냐?'
학대사는 이 말 듣고 육환장을 눈 위로 높이 들어 합장 배례로 대답하기를,
"황금으로 일천 냥만 시주하옵시면, 소승이 절에 가서 수륙제를 올릴 적에 , 아무 면 아무 촌 아무개라 외우면서 축원을 드리오면 소원대로 되나이다."

옹좌수가 쏘아붙이되,
"허허, 네놈 말이 가소롭다! 하늘이 만백성을 마련할 제, 부귀빈천, 자손유무, 복불복을 분별하여 내셨거늘, 네 말대로 한다면 가난할 이 뉘 있으며, 무자할 이 뉘 있으리? 속세에서 일러오는 인중 마른 중이렷다! 네놈 마음 고약하여 부모 은혜 배반하고, 머리 깎고 중이 되어 부처님의 제자인 양, 아미타불 거짓 공부하는 듯이 어른 보면 동냥 달라, 아이 보면 가자 하니, 불충불효 태심하며, 불측한 네 행실을 내 이미 알았으니 동냥 주어 무엇하리?"
학대사는 다시금 합장배례하며 공손히 하는 말이,

"청룡사에 축원 올려 만고영웅 소대성을 낳아 갈충보국하였으며 천수경 공부 고집하여 주상 전하 만수무강하옵기를 조석으로 발원하니, 이 어찌 갈충보국 아니오며, 부모 보은 아니리까? 그런 말씀 아예 마옵소서."
옹좌수 하는 말이,
"네 무엇을 배웠기로 그렇듯 말하느냐? 지식이 있을진대 나의 관상 보아다고."
학대사가 일러 주되,

"좌수님의 상을 살피건대, 눈썹이 길고 미간이 넓으시니 성세는 드날리되, 누당이 곤하시니 자손이 부족하고, 면상이 좁으시니 남의 말을 아니 듣고, 수족이 작으시니 횡사도 할 듯하고, 말년에 상한병을 얻어 고생하다 죽사오리다."
이 말을 듣고 성난 옹좌수가 종놈들을 소리쳐 불렀다,
"돌쇠, 뭉치, 깡쇠야! 저 중놈을 잡아내라!"

종놈들이 일시에 달려들어 굴갓을 벗겨던지고 학대사를 휘휘 휘둘러 돌위에 내동댕이치니 옹좌수가 호령하되,
"미련한 중놈아! 들어 보라. 진도남 같은 이도 중을 불가하다 하고서 운림처사 되었거늘, 너 같은 완승놈이 거짓 불도 핑계하여 남의 전곡 턱없이 달라 하니, 너 같은 놈 그저 두지 못하렷다!"
종놈 시켜 중을 눌러 잡고, 꼬챙이로 귀를 뚫고 태장 사십 도를 호되게 내리쳐서 내쫓았다. 그러나 학대사는 술법이 높은지라, 까딱없이 돌아서서 사문에 들어서니 여러 중이 내달아 영접하여 연고를 캐물으니, 학대사는 태연자약 대답하기를,

"이러저러하였노라."
중 하나가 썩 나서며,
"스승의 높은 술법으로 염라대왕께 전갈하여 강임도령 차사 놓아 옹고집을 잡아다가 지옥 속에 엄히 넣고, 세상에 영영 나지 못하게 하옵소서."
학대사는 대답하되,
"그는 불가하다."

다른 중이 나서면서,
'그러하오면 해동청 보라매 되어 청천운간 높이 떠서 서산에 머물다가 날쌔게 달려들어, 옹가놈 대갈통을 두 발로 덥석 쥐고 두 눈알을 꼭지 떨어진 수박 파듯 하사이다."
학대사는 움칠하며 대답하되,
"아서라,아서라! 그도 못 하겠다."

또 한 중이 썩 나서며,
'그러하오면 만첩청산 맹호 되어 야심경 깊은 밤에 담장을 넘어들어 옹가놈을 물어다가, 사람 없는 험한 산 외진 골에서 뼈까지 먹사이다."
학대사는 여전하게,
"그도 또한 못 하겠다."
다시 한 중이 여쭈기를,

"그러하오면 신미산 여우 되어 분단장 곱게 하고 비단옷 맵시 내어,호색하는 옹고집 품에 누워 단순호치 빵긋 벌려 좋은 말로 옹고집을 속일 적에 '첩은 본디 월궁 선녀이옵는데, 옥황사제께 죄를 얻어 인간계로 내치시매 갈 바를 몰랐더니, 산신님이 불러들여 좌수님과 연분이 있다 하여 지시하옵기로 이에 찾아왔나이다.' 하며 온갖 교태 내보이면, 호색하는 그 놈이라 필경에는 대혹하여, 등치며 배만지며 온갖 희롱 진탕하다 촉풍상한 덧들려서 말라죽게 하옵소서."

학대사 벌떡 일어나며 하는 말이,
"아서라, 그도 못 하겠다."
술법 높은 학대사는 괴이한 꾀 나는지라, 동자 시켜 짚 한 단을 끌어 내어 허수아비 만들어 놓고 보니 영락 없는 옹고집의 불측한 상이렷다. 부적을 써 붙이니 이 놈의 화상, 말대가리 주걱턱에 어디로 보나 영락없는 옹가였다.
허수아비 거드럭거드럭 옹가집을 찾아가서 사랑문 드르륵 열며 분부할제,
"늙은 종 돌쇠야, 젊은 종 몽치, 깡쇠야, 어찌 그리 게으르고 방자하냐? 말 콩 주고 여물 썰어라! 춘단이는 바삐 나와 발 쓸어라."

하며 태연히 앉았으니, 이리 보나 저리 보나 분명한 옹좌수였다.
이 때 실옹가 들어서며 하는 말이,
"어떠한 손이 왔기로 이렇듯 사랑채가 소란하냐?"
허옹가가 이 말 듣고 나앉으며,
"그대 어쩐 사람이기로 예 없이 남의 집에 들어와 주인인 체하느뇨?"
실옹가 버럭 성을 내며 호령하되,

"네가 나의 형세 유족함을 듣고 재물을 탈취코자 집안으로 당돌히 들었으니 내 어찌 그저 두랴! 깡쇠야, 이 놈을 잡아내라."
노복들이 얼이 빠져 이도 보고 저도 보고, 이리 보고 저리 보나 이옹 저옹이 같은지라, 두 옹이 아옹다옹 맞다투니 그 옹이 그 옹이요, 백운심처 깊은 곳에 처사 찾기는 쉬울망정, 백주당상 이 방 안에 우리 댁 좌수님 찾을 가망 전혀 없어, 입 다물고 말 없더니, 안채로 들어가서 마님께 아뢰기를,
"일이 났소, 일이 났소! 아씨님 일이 났소! 우리 댁 좌수님이 둘이 되었으니 보던 중 처음입니다. 집안에 이런 변이 세상에 또 있겠습니까?"

마님이 이 말 듣고 대경실색하는 말이,
"애고 애고, 이게 웬말이냐? 좌수님이 중만 보면 당장에 묶어 놓고 악한 형벌 마구 하여 불도를 업신여기며, 팔십당년 늙은 모친 박대한 죄 어찌 없을까보냐? 땅 신령이 발동하고 부처님이 도술부려 하늘이 내리신 죄, 인력으로 어찌하리?"
마나님은 춘단 어미를 불러들여 분부하되,
"바삐 나가 네가 진위를 가려 보라."

춘단 어미가 사랑채로 바삐 나가, 문 틈을 열고 기웃기웃 엿보는데, '네가 옹가냐? 내가 옹가다!' 하고 서로 고집하여 호령 호령하니 말투와 몸놀림이 똑같은데, 이목구비도 두 좌수가 흡사하니, 춘단 어미 기가 막혀 하는 말이,
"'뉘라서 까마귀 암수를 알아보리요?' 하더니, 뉘라서 어찌 두 좌수의 진위를 가리리요?"
춘단 어미 허겁지겁 안으로 들어서며,
"마님 마님! 두 좌수님 모두가 흡사하와, 소비는 전혀 알아볼 수 없사옵니다."

마나님이 생각난 듯 하는 말이,
"우리집 좌수님은 새로이 좌수 되어 도포를 성급히 다루다가 불똥이 떨어져서 안자락이 탔으므로, 구멍이 나 있으니, 그것을 찾아보면 진위를 가릴지라, 다시 나가 알아오라."
춘단 어미 다시 나와 사랑문을 열어젖히면서,
"알아볼 일 있사오니 도포를 보사이다. 안자락에 불똥 구멍 있나이다."

실옹가가 나앉으며 도포 자락 펼쳐 뵈니, 구멍이 또렷하니 우리댁 좌수님이 분명하것다. 허옹가도 뒤따라 나 앉으며,
"예라 이 년! 요망하다, 가소롭다! 남산 위에 봉화 들 때 종각 인경 뗑뗑 치고, 사대문을 활짝 열 때 순라군이 제격이라, 그만 표는 나도 있다."
허옹가가 앞자락을 펼쳐 뵈니 그도 또한 뚜렷하것다. 알 길이 전혀 없는지라, 답답한 춘단 어미 안으로 들어서며 마님 불어 아뢰기를,
"애고 이게 웬 변일꼬? 불구멍이 두 좌수께 다 있으니 소비는 전혀 알 수 없소이다. 마님께서 몸소 나가 보옵소서."
마나님 이 말 듣고 낯빛이 흐려지며 탄식하되,

"우리 둘이 만났을 제 '여필종부 본을 받아 서사에 지는 해를 긴 노를 잡아매고 길이 영화 누리면서 살아서 이별 말고 죽어도 한날 죽자.' 이렇듯이 천지에 맹세하고 일월도 보았거늘, 뜻밖에 변이 나니 꿈인가 생시인가? 이 일이 웬일일꼬? 도덕 높은 공부자도 *양호의 화액을 입었다가 도로 놓여 성인 되셨으매, 자고로 성인들도 한때 곤액 있거니와, 이런 괴변 또 있을꼬? 내 행실 가지기를 송백같이 굳었거늘, 두 낭군을 어찌 새삼 섬기리요?"
이렇듯 탄식할 제 며늘아기 여쭈기를,

"집안에 변을 보매 체모가 아니 서니 이 몸이 밝히오리다."
사랑방문 퍼뜩 열고 들어가니, 허옹가 나앉으며 이르기를,
"아가 아가, 게 앉아 자세히 들어 보라. 창원 땅 마산포서 너의 신행하여 올 제, 십여 필마 바리로 온갖 기물 실어 두고 내가 후행으로 따라올 제. 상사마 한 놈이 암말 보고 날뛰다가 뒤뚱거려 실은 것을 파삭파삭 결딴내어, 놋동이는 한복판이 뚫어져서 못 쓰게 되었기로 벽장에 넣었거늘, 이도 또한 헛말이냐? 너의 시아비는 바로 내로다!"
기가 막힌 실옹가도 앞으로 나앉더니,

"애고 저놈 보게. 내가 할말 제가 하니, 애고 애고 이 일을 어찌하리? 새아기야, 내 얼굴을 자세히 보라! 네 시아비는 내 아니냐?"
며느리가 공손히 여쭈기를,
"우리 아버님은 머리 위로 금이 있고, 금 가운데 흰머리가 있사오니 이 표를 보사이다."
실옹가가 얼른 나앉으며 머리 풀고 표를 뵈니, 골통이 차돌 같아 송곳으로 찔러 본들 물 한점 피 한방울 아니나겠더라. 허옹가도 나앉으며 요술부려 그 흰털 뽑아 내어 제 머리에 붙인지라, 실옹가의 표적은 없어지고 허옹가의 표적이 분명하것다.

"며느리야! 내 머리를 자세히 보라." 하니, 며늘아기 살펴보고,
"틀림없는 우리 시아버님이오."
실옹가는 복통할 노릇이라, 주먹으로 가슴치고 머리를 지끈지끈 두드리며,
"애고 애고, 허옹가는 아비삼고 실옹가를 구박하니, 기막혀 나 죽겠네! 내 마음에 맺힌 설움 누구보고 하소연하랴?"
종놈들 거동 보니, 남문 밖 사정으로 걸음을 재촉하여 서방님을 찾아간다.

"가사이다, 가사이다. 서방님 어서 바삐 가사이다! 일이 났소, 변이 났소. 우리 댁 좌수님이 두 분이 되어 있소."
서방님이 이 말 듣고, 화살전통 걸어멘 채 천방지축 집에 와서 사랑으로 들어가니, 허옹가가 태연자약 나앉으며 탄식하되,
"애고 애고, 저 놈 보게, 내가 할 말 제가 하네."
아들놈의 거동 보니, 맥맥상간 살펴보나 이도 같고 저도 같아알 길이 전혀 없어 어리둥절 서 있것다. 허옹가가 나앉으며 실옹가의 아들 불러 재촉하여 이르기를,
"너의 모께 알아보게 좀 나오라 하여다고! 이렇듯이 가변 중에 내외할 것 전혀 없다!"

하니, 실옹가 아들놈이 안으로 들어가서,
"어머님 어머님, 사랑방에 괴변 나서 아버님이 둘이오니, 어서 나가 자세히 살펴보소서."
내외도 불구하고 마나님이 사랑에 썩 나서니, 허옹가가 실옹가의 아내보고 앞질러 하는 말이,
"여보 임자! 내 말을 자세히 들어 봐요. 우리 둘이 첫날밤 신방으로 들었을 때, 내가 먼저 옹품하자 하였더니 언짢은 기색으로 임자가 돌아앉기로, 내 다시 타이르며 좋은 말로 임자를 호릴 적에 '이같이 좋은 밤은 백년에 한번 있을 뿐인지라 어찌 서로 허송하랴?'하지 그제서야 임자가 순응하여 서로 동품하였으니, 그런 일을 더듬어서 진위를 분별하소."

실옹가의 아내가 굽이굽이 생각하니, 과연 그 말이 맞은지라, 허옹가를 지아비라 일컬으니, 실옹가는 복장을 쾅쾅 치나 눈에서 불이 날 뿐 어찌할 수 없으렷다.
실옹가 아내 측은하여 하는 말이,
"두 분이 똑같으니, 소첩인들 어이 아오? 애통하오, 애통하오!"
안으로 들어가도 마음이 아니 놓여 팔자 한탄 소란하다.

"애고 애고 내 팔자야! 여필종부 옛말대로 한 낭군 모셨거늘, 이제 와 이도 같고 저도 같은 두 낭군이 웬 변인고? 전생에 무슨 득죄하였기로 이년의 드센 팔자 이렇듯 애통할꼬? 애고 애고 내 팔자야!"
이럴 즈음 구불촌 김별감이 문 밖에 찾아와서,
"옹좌수 게 있는가?"
하니, 허옹가가 썩 나서며,

"그게 뉘신가? 허허 이거 김별감 아닌가. 달포를 못 보았는데, 그 새 댁내 무고한가? 나는 요새 집안에 변괴 있어 편치도 못하다네. 어디서 온 누구인지 말투와 몸놀림에 형용도 흡사하여, 나와 같은 자 들어와서 옹좌수라 일컬으며, 나의 재물 빼앗고자 몹쓸 비계 부리면서 낸 체하고 가산을 분별하니 이런 변이 어디 또 있을는고? '그의 아내는 알지 못하되 그의벗은 알지로다'하였으니, 자네 나를 모를까보냐? 나와 자네는 지기상통하는 터수, 우리 뜻을 명명백백 분별하여 저 놈을 쫓아 주게."

실옹가는 이 말 듣고 가슴을 꽝꽝 치며 호령하기를,
"애고 애고 저놈 보게! 제가 낸 체 천연히 들어 앉아 좋은 말로 저렇듯 늘어놓네! 이 놈 죽일 놈아, 네가 옹가냐 내가 옹가제!"
이렇듯이 두 옹가 아옹다옹 다툴 적에, 김별감은 이리 보고 저리 보고 어이없어 하는 말이,
"양옹이 옹옹하니 이옹이 저옹 같고 저옹이 이옹 같아 양오이 흡사하니 분별치 못하겠네! 사실이 이럴진대 관가에 바삐 가서 송사나 하여 보게."

양옹이 이 말을 옳게 여겨, 서로 잡고 관정에 달려가서 송사를 아뢰었다. 사또가 나앉으며 양옹을 살피건대, 얼굴도 흡사하고 의복도 같은 고로 형방에게 분부하되,
"저 두 놈 옷을 벗겨 가려 보라."
하니, 형방이 썩 나서며 양옹을 발가벗기었다.
차돌 같은 대갈통이 같거니와, 가슴, 팔뚝, 다리, 발이 모두 같고 불알마저 흡사하니, 그 진위를 뉘라서 가리리요.
실옹가가 먼저 아뢰기를,

"민이 조상 대대로 옹당촌에 사옵는데, 천만의외로 생면부지 모를 자가 민과 행색 같이하고 태연히 들어와서, 민의 집을 제 집이라, 민의 가솔을 제 가솔이라 이르오니 세상에 이런 변괴 어디 또 있나이까? 명명하신 성주께서 저 놈을 엄문하와 변백하여 주옵소서."
허옹가도 또한 아뢰기를,
"민이 사뢰고자 하던 것을 저 놈이 다 아뢰매 민은 다시 사뢸 말씀 없사오니, 명철하신 성주께서 샅샅이 살피시와 허실을 밝혀 가려 주옵소서. 이제는 죽사와도 여한이 없겠나이다."

사또가 엄히 꾸짖어 양옹을 함구케 한 연후에 육방의 아전과 내빈 행객 불러 내어 두 옹가를 살펴보게 하였으나, 실옹이 허옹 같고 허옹이 실옹 같아 전혀 알 수 없는지라, 형방이 아뢰기를,
"두 백성의 호적을 상고하여 보사이다."
사또는,

"허허 그 말이 옳도다." 하고 호적색을 부러 놓고, 양옹의 호적을 강받을 때, 실옹가가 나 앉으며 아뢰기를,
"민의 아비 이름은 옹송이옵고 조는 만송이옵나이다."
사또가 이 말 듣고 하는 말이,
"허허 그 놈의 호적은 옹송망송하여 전혀 알 수 없으니, 다음 백성 아뢰라."
이 때 허옹가 나앉으며 아뢰기를,

"자하골 김등네 좌정하였을 적에, 민의 아비 좌수로 거행하며 백성을 애휼하온 공으로 말미암아 온갖 부역을 삭감하였기로 관내에 유명하오니, 옹돌면 제일호 유생 옹고집이요, 고집의 나이 삼십칠 세요, 부학생은 옹송이온데 절충장군이옵고, 조는 상이오나 오위장 지내옵고, 고조는 맹송이요, 본은 해주이오며, 처는 진주 최씨요, 아들놈은 골이온데 나이는 십구 세 무인생이요, 하인으로 천비 소생 돌쇠가 있소이다.

다시 민의 세간을 아뢰리다. 논밭 곡식 합하여 이천백 석이요, 마굿간에 기마가 여섯 필이요, 암수퇘지 합하여 스물두 마리요, 암탉 장닭 합 육십 수요, 기물 등속으로 안성 방자유기 열 벌이요, 앞닫이 반닫이에, 이층장, 화류문갑, 용장, 봉장, 가께수리, 산수병풍, 연병풍 다 있사옵고, 모란 그린 병풍 한 벌은 민의 자식 신혼시에 매화 그린 폭이 없어져 고치고자 다락에 따로 얹어 두었사오니 그것으로도 아옵시고, 책자로 말하오면 천자?당음?당률?사략?통감?소학?대학?논어?맹자?시전?서전?주역?춘추?예기?주벽?총목까지 쌓아 두었소이다.

또 은가락지가 이십 걸이, 금반지는 한 죽이요, 비단으로 말하오면 청?홍?자색 합쳐서 열세 필이요, 모시가 서른 통이요, 명주가 마흔 통이온 중, 한 필은 민의 큰 딸아이가 첫몸을 보았기로 개짐을 명주통에 끼웠더니, 피가 조금 묻었으매, 이것을 보아도 명명백백 알 것이오. 진신?마른신이 석 죽이요, 쌍코 줄변자가 여섯 컬레 중에 한 컬레는 이달 초사흘 밤에 쥐가 코를 갉아먹어 신지 못하옵고 안 벽장에 넣었으니, 이것도 염문하와 하나라도 틀리오면 곤장 맞고 죽사와도 할 말이 없사오나, 저 놈이 민의 세간 이렇듯이 넉넉함을 얻어 듣고, 욕심 내어 송정 요란케 하오니, 저렇듯 무도한 놈을 처치하사 타인을 경계하옵소서."

관가에서 듣기를 다 하더니 이르기를,
"그 백성이 참 옹좌수라."
하고 당상으로 올려 앉히며 기생을 불러들이더니,
"이 양반께 술 권하라."
하였다. 일색 기생이 술을 들고 권주가를 부르는데,
"잡으시오, 잡으시오, 이 술 한잔 잡으시오. 이 술 한잔 잡으시면 천년 만년 사시리라. 이는 술이 아니오라 한무제가 승로반에 이슬받은 것이오니 쓰나 다나 잡수시오."

흥이 나는 옹좌수가 술잔을 받아 들고 화답하여 하는 말이,
"하마터면 아까운 가장집물 저 놈한테 빼앗기고, 이러한 일등 미색의 이렇듯 맛난 술을 못 먹을 뻔하였구나! 그러나 성주께서 흑백을 가려 주시니, 그 은혜는 백골난망이옵니다. 겨를을 내시어서 한 차례 민의 집에 나오시오. 막걸리로 한잔 술 대접하오리다."

"그는 염려 말게. 처치하여 줌세."
뜰 아래 꿇어앉은 실옹가를 불러 분부하되,
"네놈은 흉칙한 인간으로서, 음흉한 뜻을 두고 남의 세간 탈취코자 하였으니, 죄상인즉 마땅히 의율정배할 것이로되, 가벼히 처벌하니 바삐 끌어 내어 물리쳐라."
대곤 삼십 도를 매우 치고, 죄목을 엄히 문초하되,

"네 이 놈! 차후에도 옹가라 하겠느냐?"
실옹가는 곰곰이 생각건대, 만일 다시 옹가라 우길진대 필시 곤장 밑에 죽겠기에,
"예, 옹가가 아니오니, 처분대로 하옵소서."
아전이 호령하기를,
"장채 안동하여 저 놈을 월경시키라."

하니, 군노사령 벌떼같이 일시에 달려들어 옹가놈의 상투를 움켜잡고 휘휘 둘러 내쫓으니, 실옹가는 할 수 없이걸인 신세가 되고 말았다.
고항 산천 멀리하고 남북으로 빌어먹을 새, 가슴을 탕탕 치며 대성통곡하며 하는 말이,
"답답하다 내 신세야! 이 일이 꿈이냐 생시냐? 어찌하면 좋을는고? 이른바 낙미지액이로다."

무지하던 고집이 놈 어느덧 허물을 뉘우치고 애통하여 하는 소리가, "나는 죽어 싼 놈이로되, 당상학발 우리 모친 다시 봉양하고 싶고, 어여쁜 우리 아내 월하의 인연 맺어 일월로 다짐하고 천지로 맹세하여 백년종사 하렸더니, 독수공방 적막한데, 임도 없이 홀로 누워 전전반측 잠 못들어 수심으로 지내는가? 슬하에 어린 새끼 금옥같이 사랑하여 어를 적에 '섬마둥둥 내 사랑아! 후두둑후두둑, 엄마 아빠 눈에 암만' 나 죽겠네, 나 죽겠어! 이 일이 생시는 아니로다. 아마도 꿈이니, 꿈이거든 어서 바삐 깨어나라!"

이럴 즈음 허옹가의 거동 보세. 송사에 이기고서 돌아올 때 의기양양하는 거동, 진소위 제법이것다. 얼씨구나 좋을시고! 손춤을 휘저으며 노래가락 좋을시고! 이러저리 다니면서 조롱하여 하는 말이,
"허허 흉악한 놈 다 보것다! 하마터면 고운 우리 마누라를 빼앗길 뻔하였구나."
하고 집으로 들어서며 회색이 만면하니, 온 집안 식솔들이 송사에 이겼다는 말을 듣고 반가이 영접할 새, 실옹가의 마누라가 왈칵 뛰쳐 내달으며 허옹가의 손을 잡고 다시금 묻는 말이,

"그래 참말 송사에 이겼소이까?"
"허허 그리하였다네. 그사이 편안히 있었는가? 세간은 고사하고 자칫하면 자네마저 놓칠 뻔하였다네! 원님이 명찰하여 주시기로, 자네 얼굴 다시 보니 이런 경사 또 있는가? 불행 중 행이로세!"
그럭저럭 날 저물매, 허옹가는 실옹가의 아내와 더불어, 긴긴 밤을 수작타가 원앙금침 펼쳐놓고 한자리에 누웠으니, 양인 심사 깊은 정을 새삼 일러 무엇하랴!

이같이 즐기다가 잠시 잠 이들어 실옹가의 아내가 한 꿈을 얻으매 하늘에서 허수아비가 무수히 떨어져 보이기에 문득 깨달으니 남가일몽이라. 허옹가한테 몽사를 말하니, 허옹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 일이 분명하면 아마도 태기가 있을 듯하나, 꿈과 같을진대 허수아비를 낳을 듯하네마는, 장차 내 두고 보리라."

이러구러 십 삭이 차매 실옹가의 아내 몸이 고단하여 자리에 누워 몸을 풀 새 진양 성중 가가조에 개구리 해산하듯, 돼지가 새끼 낳듯 무수히 퍼낳는데 하나 둘 셋 넷 부지기수로다. 이렇듯이 해산하니 보던 바 처음이며 듣던 바 처음이다.
실옹가의 마누라는 자식 많아 좋아라고 괴로움도 다 잊으며 주렁주렁 길러 내었다.

이렇듯이 즐거이 지낼 무렵, 실옹가는 할 수 없이 세간 처자 모조리 빼앗기고 팔자에 없는 곤장 맞고 쫓겨나니 세상에 살아본들 무엇하리? '애고 애고 내 팔자야. 죽장망혜 단표자로 만첩청산 들어가니 산은 높아 천봉이요, 골은 깊어 만학이라. 인적은 고요하고 수목은 빽빽한데 때는 마침 봄철이라. 출림비조 산새들은 쌍거쌍래 날아들 새, 슬피 우는 두견새는 이내 설움 자아내어 꽃떨기에 눈물 뿌려 점점이 맺어두고, 불여귀는 이로 삼으니 슬프다, 이런 공산 속에서는 아무리 철석 같은 간장이라도 아니 울지는 못하리라.'

자살을 결심하고 슬피 울 새 한 곳을 쳐다보니 층암절벽 벼랑 위에 백발도사 높이 앉아 청려장을 옆에 끼고 반송 가지를 휘어 잡고 노래 불러 하는 말이,
"뉘우쳐도 미치지 못하느니라. 하늘이 주신 벌이거늘, 누구를 원망하며 누구를 탓하고자 하는가?"
실옹가는 이말을 다 들으매 어찌할 줄 모르는 듯, 도사 앞에 급히 나아가 합장배례 급히 하며 애원하되,
"이 몸의 죄 돌이켜 생각하면 천만 번 죽사와도 아깝지 아니하오나, 밝으신 도덕하에 제발 덕분 살려 주사이다. 당상의 늙은 모친, 규중의 어린 처자, 다시 보게 하옵소서. 이 소원 풀고 나면 지하로 돌아가도 여한이 없을 줄로 아나이다. 제발 덕분 살려 주옵소서."

온갖 정성 다 기울여 애걸하니, 도사가 소리 높여 꾸짖기를,
"천지간에 몹쓸 놈아! 이제도 팔십당년 병든 모친 구박하여 냉돌방에 두려는가? 불도를 업신여겨 못된 짓 하려는가? 너 같은 몹쓸 놈은 응당 죽여 마땅하되, 정상이 가긍하고 너의 처자 불쌍하기로 풀어 주겠으니 돌아가 개과천선하여라."

도사는 부적 한 장을 써 주면서 일러두길,
"이 부적 간직하고 네 집에 돌아가면 괴이한 일이 있으리라."
하고 슬며시 사라지니, 도사는 간데온데없었다.
즐거운 마음으로 고향에 돌아와서 제 집 문전 다다르니, 고루거각 높은 집에 청풍명월 맑은 경개는 이미 눈에익은 풍취로다. 담장 안의 홍련화는 주인을 반기는 듯, 영산홍아 잘 있었느냐? 자산홍아 무사하냐? 옛일을 생각하매 오늘이 옳으며 어제는 잘못임을 깨닫고 예집을 다시 찾아오니 죽을 마음 전혀 없다.

"가소롭다, 허옹가야! 이제도 네가 옹가라고 장담을 할 것이냐?"
늙은 하인 내달으며,
"애고 애고 좌수님, 저 놈이 또 왔소이다. 천살맞았는지 또 와서 지랄하니 이 일을 어찌하오리까?"
이럴 즈음에, 방에 있던 옹가는 간데없고, 난데없는 짚 한 뭇이 놓여 있을 따름이요, 허옹가와 수다한 자식들도 홀연히 허수아비 되므로, 온 집안이 그제서야 깨달은 듯 박장대소하였다.

좌수가 부인에게 하는 말이,
"마누라, 그 사이 허수아비 자식을 저렇듯이 무수히 낳았으니, 그 놈과 한가지로 얼마나 좋아하였을꼬? 한상에서 밥도 먹었는가?"
얼이 빠진 부인은 아무 말 못 하고서, 방안을 돌아가며 허옹가의 자식들 살펴보니, 이를 보아도 허수하비요, 저를 보아도 허수하비라, 아무리 다시 보아도 허수아비 무더기가 분명하였다. 부인은 실옹가를 맞이하여 반갑기 그지없되 일변 지난 일을 생각하고 매우 부끄러워하였다.

도승의 술법에 탄복하여, 옹좌수 그로부터 모친께 효성하며 불도를 공경하여 잘못을 뉘우치고 착한 일 많이 하니, 모두들 그 어짊을 칭송하여 마지 아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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