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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장전, 광문자전, 민옹전(국역)
2003.12.24 | 조회수 : 4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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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거간꾼과 집 거간꾼 따위들이 손바닥을 치면서 옛날 관중, 소진을 흉내 내어 닭,개,말,소 등의 피를 마시며 맹세한다"더니 과연 그렇다.
"이별이 다가온다"는 말을 듣자마자 가락지를 팽개치고 수건을 찢어 버리며,등불을 등진 채 바람벽을 향하여 머리를 숙이고 슬픈 목소리를 머금는 여인이야말로 믿음직스러운 첩이었다. 또한 간을 도할 듯이 쓸개를 녹일 듯이, 손을 마주 잡고 마음을 내 보이는 자야말로 믿음직스러운 벗이었다.
그러나 콧마루에 부채를 가친 채 양쪽 눈을 깜박거리는 것이 장쾌(張  : 거간꾼)의 요술이다. 위험한 말로 움직여 보기도 하거니와 아름다운 말로 핥아 주기도 하고, 그가 꺼리는 것을 꼬집어 내기도 하며, 강한 놈에게는 위협으로, 약한 놈에게는 억압으로, 같은 것들끼리는 흩어지게 하고, 헤어져 있는 것들은 합치게 해 주는 솜씨는 패자( 者)나 변사(辯士)들이 마음대로 열고 닫는 임기 응변이기도 하다.
옛날에 심장병을 앓는 사람이 있었다. 그가 아내에게 시켜 약을 달이게 하였는데, 많아지기도 하고 적어지기도 해서 그 분량이 적당하지 않았다. 그는 화가 나서 첩에게 달이도록 시켰다. 첩이 달이는 약은 많고 적음이 한결같았다. 그는 첩이 잘한다고 여겨서, 창구멍을 뚫고 엿보았다. 그랬더니 그 첩은 약물이 많아지면 땅바닥에 내버리고, 적어지면 물을 더 탔다. 이것이 바로 약물의 분량을 적당하게 하는 방법이었다.
그러니 귀에다 입을 대고 속삭이는 소리는 지극히 솔직한 말이 아니다. "비밀을 누설하지 말라"고 부탁하는 말도 깊은 사람은 아니다. 정이 얕고 깊은 것을 나타내려고 애쓰는 자도 참다운 벗은 아니다.
송욱,조탑타,장덕홍 세 사람이 광통교 위에서 벗 사귀는 방법을 서로 논하였다. 탑타가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아침나절에 바가지를 두드리면서 밥을 빌러 가다가 어떤 가겟집에 들렀거든. 때마침 가게 이층에 올라가서 옷감을 흥정하는 자가 있었는데, 그는 옷감을 골라서 혀로 핥아 보고는, 공중을 쳐다보며 햇빛에다 비추어서 그 두터운 정도를 따져 보더군. 그 옷감의 값은 그들의 입에 달렸는데, 서로 먼저 부르라고 사양하더라구. 얼마 지나자 두 사람 다 옷감에 대한 일은 잊어버렸어. 옷감 가게 주인은 갑자기 먼 산을 바라보며 노래를 부르는데, 그 소리가 구름 위로 치솟더군. 그 사람도 뒷짐을 지고 어정거리며 벽 위에 걸린 그림을 보더라구."
송옥이
"네가 벗 사귀는 도리는 그럴 듯하지만, 참된 도리는 그게 아냐."
하자, 덕홍도
"허수아비도 포장을 드리울 수 있으니, 그것을 당기는 노끈이 있기 때문이지."
라고 말하였다. 송욱이 또 이렇게 말하였다.
"넌 얼굴로 사귀는 것만 알고, 참된 방법은 알지 못했구나. 대개 군자의 벗 사귐이 세 가지고, 그 방법은 다섯 가지거든. 서른이 되어서도 참된 벗이 하나도 없는 거야. 비록 그렇지만 나도 오래 전에 참된 방법을 들은 적이 있다네. 팔이 바깥으로 뻗지 않는 까닭은 술잔을 잡기에 편리하게 하려고 그렇다네."
덕홍이 말하였다.
"그렇고말고. 옛 시에 이르기를,
저 숲 속에 학이 울 제
그 새끼가 따라 우네.
벼슬이 아름다우니
너와 함께 하여 보세.

하였거든. 이를 두고 한 말일 게야."
송욱이 말하였다.
"너하고는 벗에 대하여 논할 수 있겠구나. 내가 아까 그 가운데 하나를 가르쳤더니, 너는 벌써 둘을 아는구나. 온 천하 사람들이 쫓아가는 것은 오로지 세(勢)요, 서로 다투어 얻으려 하는 것은 명(名)과 이(利)야. 그러니까 술잔이 처음부터 입과 더불어 꾀한 것은 아니었지만, 팔이 저절로 굽어든 까닭은 자연스러운 세(勢)이기 때문이지. 저 학이 서로 소리를 맞추어 우는 것도 명(名)을 위해서가 아니겠는가. 아름다운 벼슬이라는 것도 이(利)를 말하는 거야. 그러나 쫓아오는 자가 많아지면 세(勢)가 나누어지고, 얻으려는 자가 많아지면 명(名)과 이(利)도 공(功)이 없는 법이지. 그래서 군자가 이 세 가지에 대하여 말하기를 싫어한 지가 오래 되었단다. 내가 일부러 은어(隱語)를 써서 네게 가르쳤는데, 너는 알아들었구나.
이제부터 남과 사귈 때에 앞으로 잘할 것을 칭찬하지 않고 오직 앞서 잘한 것들만 칭찬한다면, 그는 아무런 아름다움도 느끼지 못할 거야. 그리고 그가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점도 깨우쳐 주지 마라. 그가 앞으로 그 일을 행해서 알게 된다면 무색하게 되기 때문이지. 또 여러 친구들이나 많은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어느 한 사람을 '제일'이라고 칭찬하지도 말게. '제일'이라는 말은 보다 더 위가 없다는 뜻이니만큼, 한자리에 가득 찬 사람들이 모두 쓸쓸하게 기운이 떨어지기 때문이지.
그러므로 벗을 사귀는 데 다섯 가지 방법이 있으니, 장차 그를 칭찬하려고 한다면 먼저 잘못을 드러내어서 꾸짖을 것이며, 장차 기쁨을 보여 주려면 먼저 노여움으로 밝혀야 하네. 장차 친하게 지내려고 한다면 먼저 내 뜻을 꼿꼿이 세우고 몸가짐은 수줍은 듯이 가져야 하네. 남들로 하여금 나를 믿게 하려면, 짐짓 의심스러운 듯이 기다려야 하네. 대개 열사(烈士)는 슬픔이 많고, 미인은 눈물이 많은데, 영웅이 잘 우는 까닭은 남의 마음을 움직이려고 하기 때문이야. 이 다섯 가지 방법이 군자의 비밀 계획인 동시에 처세하는 데 쓰는 아름다운 방법이지."
탑타가 그 말을 듣고서 덕홍에게 물었다.
"송 군의 말은 너무 어렵고 은어라서, 나는 알아듣지 못하겠네."
덕홍이 말하였다.
"네가 이 말을 어떻게 알아듣는단 말이냐? 그가 잘하는데도 일부러 소리쳐 가며 책망하면, 그의 명예는 더욱 높아질 것이다. 노여움은 사랑에서 나오고 인정도 견책에서 나오므로, 한 집안 사람 사이에서는 아무리 종알거려도 싫어하지 않는 법이다. 이미 친하면서도 더욱 거리가 먼 듯 한다면, 더할 수 없이 친해지게 된다. 이미 믿으면서도 오히려 의심스러운 듯이 한다면, 더할 수 없이 미덥게 된다. 술에 취하고 밤은 깊어서 다른 사람들은 모두 쓰러져 자건만, (친한 벗 두 사람만이) 말없이 마주 쳐다보며 취한 나머지 흥겨워 비분 강개한 빛을 띠고 있으면, 그 누가 처연하게 감동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벗을 사귈 때에는 서로 그 마음을 알아주는 것보다 더 고귀한 방법이 없으며, 서로 그 마음을 감동시키는 것보다 더 즐거운 것도 없다네.
성급한 자가 자기의 노여운 마음을 풀거나 사나운 자가 자기의 원망스러운 마음을 풀려면, 울음보다 더 빠른 방법이 없다네. 그래서 나도 남과 사귈 때에 가끔 울고 싶은 적이 없지 않았지만, 울려고 해도 눈물이 흘러내리지 않더군. 그래서 지금까지 나라 안을 돌아다닌 지 삼십일 년이나 되었지만, 아직 참된 친구가 하나도 없다네."
탑타가 말하였다.
"그렇다면 내가 충성스럽게 벗을 사귀며 정의롭게 벗을 정하겠으니, 어떻게 해야 하겠나?"
덕홍이 그 말을 듣고는 탑타의 얼굴에 침을 뱉으며 꾸짖었다.
"에이, 더럽구나. 너는 그것을 말이라고 하느냐? 내 말을 들어 봐라. 대체로 가난한 사람은 바라는 것이 많이 때문에 정의를한없이 그리워해서, 저 하늘을 쳐다봐야 가물가물하건만 오히려 곡식이라도 쏟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단다. 남의 기침소리만 들어도 목을 석 자나 뽑곤 하지. 그러나 재산을 모으는 자는 인색하다는 이름쯤은 부끄러워하지도 않으니, 남이 나에게 무엇을 바라는 생각조차 못하게 하는 거야.
또 천한 사람은 아낄 것이 없으므로 그의 충성심은 어떤 어려운 일이라도 사양하지 않는 법이지. 왜 그런가 하면, 물을 건널 때에 옷을 걷지 않는 까닭은 다 떨어진 홑바지를 입었지 때문이고, 수레는 타는 사람이 가죽신 위에다 덧버선을 신는 까닭은 진흙이 스며들까 봐 걱정하기 때문이거든. 가죽신 밑창까지도 아끼는 사람이 제 몸뚱이야 오죽하겠느냐? 그러기에 충(忠)이니 의(義)니 하고 부르짖는 것은 가난하고 천한 자들의 상투적인 구호일 뿐이고, 부귀를 누리는 자들에게는 논할 거리도 안 되는 거야."
탑타가 추연히 얼굴빛을 붉히면서 말하였다.
"내가 한평생 벗을 하나도 사귀지 못할지언정, 너희들 말처럼 '군자의 사귐'은 안 하겠다."
그래서 세 사람이 서로 갓과 옷을 찢어 버리고, 때묻은 얼굴과 흐트러진 머리에다 새끼줄을 띠 삼아 졸라매고는 시장 바닥에서 노래 불렀다.
골계 선생이 일을 듣고는 〈우정론〉이라는 글을 지었다.
"나무쪽을 붙이는 데에는 부레풀이 제일이고, 쇠끝을 붙이는 데에는 붕사가 그만이며, 사슴 가죽이나 말가죽을 붙이는 데에는 찹쌀 밥풀보다 잘 붙는 것이 없다. 벗을 사귐에 있어서는 '틈'이 가장 중요하다. 연(燕)나라와 월(越)나라 사이가 멀지만, 그런 틈이 아니다. 산천(山川)이 그 사이에 가로막혔다 해도, 그 틈이 아니다. 둘이서 무릎을 맞대고 자리에 나란히 앉았다 해서 '서로 밀접하다'고 말할 수 없고, 어깨를 치며 소매를 붙잡았다고 해서 '서로 합쳤다'고 말할 수 는 없으므로, 그 사이에는 틈이 있을 뿐이다.
옛날에 위앙이 장황하게 이야기를 늘어놓자 진(秦)나라 효공은 못 들은 척하며 졸았고, 응후가 노여워하지 않는 척하자 채택은 벙어리처럼 말을 못했다. 그러므로 마음에 있는 것을 겉으로 드러내어 남을 꾸짖는 것도 반드시 그럴 처지의 사람이 있겠고, 큰소리를 치면서 남을 노엽게 만드는 것도 반드시 그럴 처지의 사람이 있을 것이다.
옛날 공자 조승이 소개한 성안후와 상산왕도 틈이 없이 사귀었다. 한 번 틈이 벌어지면, 아무도 그 틈을 어떻게 할 수가 없는 법이다. 그러므로 사랑스러운 것도 틈타서 결합되며, 고자질도 그 틈을 이용해서 벌어지게 만든다. 그러므로 남을 잘 사귀는 자는 먼저 그 틈을 잘 타야 한다. 남을 잘 사귀지 못하는 자는 틈을 탈 줄 모른다.
대체로 곧은 사람은 곧바로 가 버린다. 굽은 길을 따라가지 않고, 자기의 뜻을 꺾어 가면서 무슨 일을 하지는 않는다. 한마디 말에 의견이 합해지지 않는 것은 남이 그를 이간질시켜서가 아니라, 제 스스로 앞길을 막은 셈이다. 그래서 속담에도 이르기는 '열 번 찍어서 넘어가지 않는 나무가 없다' 하였고, '성주를 위하려면 먼저 조왕께 지성을 드려라' 하였으니, 이를 두고 한 말이다.
아첨하는 데에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 자기 몸을 가다듬고 얼굴을 꾸민 뒤에 말씨도 얌전히 할뿐더러 명리(名利)에 담박하며, 다른 사람들과 사귀기를 싫어하는 척해서 자기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것이 상첨(上諂)이다. 둘째, 곧은 말을 간곡하게 해서 자기의 참된 심정을 나타내되, 그 틈을 잘 타서 이편의 뜻을 이해시키는 것이 중첨(中諂)이다. 셋째 말발굽이 다 닳고 자리굽이 해지도록 자주 찾아가서 그의 입술을 쳐다보며 얼굴빛을 잘 살펴서, 그가 말하면 덮어놓고 칭찬하며 그의 행동을 무조건 아름답게 여긴다면, 저편에서 처음 들을 때에는 기뻐한다. 그러나 오래 되면 도리어 싫증 나고, 싫증 나면 더럽게 여기게 된다. 그제는 '저놈이 나를 놀리는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하는 법이니, 이는 하첨(下諂)이다.
관중은 아홉 번이나 제후를 규합했고, 소진은 여섯 나라를 합종하였으니, '천하에 가장 커다란 사귐'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러나 송욱과 탑타는 길에서 빌어먹고 덕홍은 시장 바닥에서 미친 노래를 부를지언정, 말 거간꾼의 나쁜 술법을 쓰지는 않았다. 하물며 글 읽는 군자가 그런 짓을 할까 보냐?"

광문자전

광문은 비렁뱅이다. 그는 예전부터 종루(鐘樓) 시장 바닥에 돌아다니며 밥을 빌었다. 길거리의 여러 비렁뱅이 아이들이 광문을 두목으로 추대하여, (자기들의 보금자리인) 구멍집을 지키게 하였다.
하루는 날씨가 춥고 진눈깨비가 흩날렸는데, 여러 아이들이 서로 이끌고 밥을 빌러 나갔다. 한 아이만 병에 걸려 따라가지 못하였다. 얼마 뒤에 그 아이가 더욱 추워하더니, 신음 소리마저 아주 구슬퍼졌다. 광문이 그를 매우 불쌍히 여겨, 직접 구걸하러 나가서 법을 얻었다. 병든 아이에게 먹이려고 하였지만, 아이는 벌써 죽어 버렸다.
여러 아이들이 돌아와서는, '광문이 그 아이를 죽였다.'고 의심하였다. 그래서 서로 의논하여 광문을 두들기고는 내쫓았다. 광문이 밤중에 엉금엉금 기어서 동네 안으로 들어가, 그 집 개를 놀래 깨웠다. 집주인이 광문을 잡아 묶자, 광문이 이렇게 외쳤다.
"나는 원수를 피해서 온 놈이유. 도둑질할 뜻은 없어유. 영감님이 내 말을 믿지 않는다면, 아침나절 종루 시장 바다에서 밝혀드리겠어유."
그의 말씨가 순박하였으므로, 주인 영감도 마음속으로 광문이 도둑이 아닌 것을 알아챘다. 그래서 새벽에 풀어 주었다. 광문은 고맙다고 인사한 뒤에, 거적때기를 얻어 가지고 가 버렸다. 주인 영감이 끝내 그를 괴이하게 여겨, 그의 뒤를 밟았다. 마침 여러 거지 아이들이 한 시체를 끌어다가 수표교에 이르더니, 그 시체를 다리 아래에 던지는 것이 보였다. 광문이 다리 아래에 숨었다가 그 시체를 거적때기에 싸더니, 남몰래 지고 갔다. 서문 밖 무덤 사이에 묻고 나서는, 울면서 무슨 말인지 중얼거렸다.
집주인이 광문을 잡고서 그 영문을 물었다. 광문이 그제야 앞서 있었던 일과 어제 한 일들을 다 말해 주었다. 주인 영감은 마음속으로 광문을 의롭게 여겨서, 그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광문에게 옷을 주고는 두텁게 대하였다. 그리고 광문을 약방 부자에게 추천하여, 고용살이를 시켰다.
오래 뒤에 부자가 문 밖으로 나섰다가 자꾸만 돌아왔다. 다시 방 안에 들어와 자물쇠를 살펴보고는, 문 밖으로 나갔다. 그의 얼굴빛은 자못 불쾌한 듯 하였다가 돌아와 깜짝 놀라더니, 광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무엇인가 말하려다가, 얼굴빛이 바뀌더니 그만두었다.
광문은 그 이유를 정말 몰랐다. 날마다 잠자코 일했을 뿐이지, 감히 하직하고 떠나지도 못했다. 며칠이 지나자 부자의 처조카가 돈을 가지고 와서 부자에게 돌려주며 말했다.
"지난번 제가 아저씨께 돈을 꾸러 왔더니, 마침 아저씨가 계시지 않았어요. 그래서 제가 스스로 방에 들어가 돈을 가지고 갔었지요, 아마 아저씨께서는 모르고 계셨겠지요."
그제야 부자는 광문에게 매우 부끄러워하면 사과하였다.
"나는 소인이야. 이 일 때문에 점잖은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하였네 그려. 내 이제 자네를 볼 낯이 없네."
그리고는 자기의 모든 친구와 다른 부자나 큰 장사치들에게까지 '광문은 의로운 사람'리라고 두루 칭찬하였다. 그는 또 종실(宗室)의 손님들과 공경(公卿)의 문하에 다니는 이들에게 이르는 곳마다 광문을 칭찬하였다. 그래서 공경의 문하에 다니는 이들과 종실의 손님들이 모두 광문을 이야깃거리로 삼아, 밤마다 그들의 배갯머리에서 들려주었다. 그리하여 몇 달 사이에 사대부들이 광문의 이름을 모두 옛날 훌륭한 사람의 이름처럼 알게 되었다. 그래서 한양 사람들이 모두들
"광문을 우대하던 중인영감이야말로 참으로 어질고도 사람을 잘 알아보는 분이지."
칭찬하였고, 더욱이
"약방 부자야말로 정말 점잖은 사람이야."
하고 칭찬하였다.
이때 돈놀이꾼들은 대체로 머리 장식품이나 구슬 비취옥 따위 또는 옷. 그릇. 집. 농장. 종 등의 문서를 전당 잡고서 밑천을 계산해서 빌려주었다. 그러나 광문은 남의 빚을 보증서면서도 전당 잡을 물건이 있는지를 묻지 않았다. 천 냥도 대번에 승낙하였다.
광문의 사람됨을 말한다면, 그의 모습은 아주 더러웠고, 그의 말씨도 남을 움직이지 못했다. 입이 넓어서 두 주먹이 한꺼번에 드나들었다. 그는 또 만석(曼碩) 중놀이를 잘하고, 철괴(鐵拐) 춤을 잘 추었다. 당시에 아이들이 서로 헐뜯는 말로써
"니네 형이야말로 달문(達文)이지."
라는 말이 유행하였다. '달문'이란 광문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광문이 길에서 싸우는 이들을 만나면, 자기도 역시 옷을 벗어 젖히고 함께 싸웠다. 그러다가 무슨 말인가 지껄이면서 머리를 숙이고 땅바닥에 금을 그었다. 마치 그들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듯했다. 그러는 꼴을 보고서 시장 사람들이 모두 웃었다. 싸우던 자들도 역시 웃다가 모두 흩어져 버리곤 하였다.
광문은 나이 마흔이 넘도록 그대로 총각 머리를 땋았다. 남들이 장가들기를 권하면 그는
"대체로 아름다운 얼굴을 모두 좋아하는 법이지. 그런데 사내만 그런 게 아니라 여인네들도 역시 그렇거든. 그러니 나처럼 못생긴 놈이 어떻게 장가를 들겠어? "
하였다. 남들이 살림을 차리라고 하면 이렇게 사양하였다.
"나는 부모도 없고 형제 처자도 없으니, 무엇으로 살림을 차리겠소? 게다가 아침나절이면 노래 부르며 시장 바닥으로 들어갔다가 날이 저물면 부잣집 문턱 아래서 잠을 잔다오. 한양에 집이 팔만이나 되니, 날마다 잠자는 집을 옮겨 다녀도 내가 죽을 때까지 자 돌아다닐 수 없을 정도라오."
한양의 이름난 기생들이 모두 아리땁고 예쁘며 말쑥하였다. 그러나 광문이 칭찬해 주지 않으면 한푼 어치의 값도 나가지 못하였다. 지난번에 우림아(羽林兒)와 각전(各殿) 별감 또는 부마도위의 겸종들이 소매를 나란히 하여 운심을 찾았다. 운심은 이름난 기생이었다. 당(堂) 위에다 술자리를 벌이고 비파를 뜯으며, 운심의 춤을 즐기려고 하였다. 그러나 운심은 일부러 시간을 늦추면서 춤을 추려하지 않았다.
광문이 밤에 찾아가 당 아래에서 어정이다가, 곧 들어가서 그들의 윗자리에 서슴지 않고 앉았다. 광문은 비록 옷이 다 떨어지고 그 행동이 창피하였지만, 그의 뜻은 몹시 자유로웠다. 눈구석이 짓물러서 눈곱이 낀 채로 술 취한 듯 트림하여 양털처럼 생긴 그 머리로서 뒷꼭지에다 상투를 틀었다. 자리에 앉았던 사람들이 모두 깜짝 놀랐다. 서로 눈짓해서 광문을 몰아내려고 하였다. 그러나 광문은 더 앞으로 다가 앉아 무릎을 어루만지며 가락을 뽑아, 콧노래로 장단을 맞추었다.
운심이 그제야 일어나서 옷을 갈아입고 광문을 위해서 칼춤을 추었다. 자리에 앉았던 사람들이 모두 기뻐하였다. 그들은 다시금 광문과 벗으로 사귀고 흩어졌다.


민옹전

민 영감은 남양 사람이다. 무신년(영조4년, 1728) 민란에 관군을 따라 토벌에 끼여서, 그 공으로 첨사(僉使) 벼슬을 얻었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온 뒤에는 끝내 벼슬하지 않았다.
민 영감은 어릴 때부터 매우 영리하고 총명하며, 말을 잘하였다. 특히 옛 사람의 기인한 절개나 거룩한 발자취를 흠모하여 이따금 의기에 북받치면 흥분하기도 하였다. 그들의 전기를 읽을 때마다 한숨 쉬며 눈물 흘리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는 일곱 살이 되자,
"향탁은 이 나이에 남의 스승이 되었다."
고 벽에다 크게 썼다. 열두 살 때에는
"감라는 이 나이에 장군이 되었다."
고 썼으며, 열세 살 때에는
"외항아는 이 나이에 유세(遊說)하였다."
고 썼다. 열여덟 살 때에는
"곽거병은 이 나이에 기련에 싸우러 나갔다."
고 썼으며, 스물네 살 때에는
"항적은 이 나이에 오강을 건넜다."
고 썼다. 그러다가 마흔이 되었지만, 아무런 이름도 이루지 못하였다. 그렇지만 그는 또
"맹자는 이 나이에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
고 크게 썼다. 그 뒤에도 해가 바뀔 때마다 이런 글들을 쓰기에 지치지 않았다. 그의 집 벽은 모두 검정투성이가 되었다. 일흔 살이 되자 그의 아내가
"영감, 올해에는 까마귀를 그리지 않으시려오?"
하고 놀렸다. 그러자 민영감이 기뻐하면서
"그렇지. 당신은 빨리 먹이나 갈아주구려."
하고 말하더니 곧
"범증은 이 나이에 기이한 꾀를 좋아하였다."
고 커다랗게 썼다. 그의 아내가 발칵 화를 내며
"꾀가 아무리 기이하더라도, 장차 언제나 쓰시려오?"
하고 따졌다. 민영감이 웃으면서 말했다.
"옛날 여상은 여든 살에 장수가 되었지만, 새매처럼 드날렸다우. 이제 나를 여상에게 비한다면, 오히려 어린 아우뻘 밖에 안된다우."

지난 계유(1753), 갑술년(1754)사이에 내 나이는 열일여덟이었다. 병으로 오랫동안 시달리면서 노래, 글씨, 그림, 옛칼, 거문고, 골동품 등의 여러 잡물들을 제법 좋아하였다. 게다가 지나는 손님들을 모아놓고 익살스럽거나 우스운 옛날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을 달래었지만, 깊숙이 스며든 우울증을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러자 어떤 사람이 이렇게 말하였다.
"민영감은 기이한 사람이지요. 노래도 잘 부르지만, 말도 잘한답니다. 그의 이야기는 신나고도 괴이하고, 능청스럽고도 걸직하지요. 그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치고 마음이 상쾌하게 열리지 않는 이가 없답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몹시 기뻐서 그에게 '함께 놀러오라'고 부탁했다. 그래서 민 영감이 나를 찾아 왔는데, 나는 마침 벗들과 더불어 음악을 즐기고 있었다. 민영감은 서로 인사도 나누기 전에 퉁소 부는 자를 한참이나 들여다보더니, 그의 뺨을 치며 크게 꾸짖었다.
"주인은 즐겁게 놀자는데, 너는 어째서 성난 꼴로 있느냐?"
나는 깜짝 놀라서 그에게 까닭을 물었다. 민 영감이 말하였다.
"저 놈의 눈알이 잔뜩 튀어나오도록 사나운 기운을 품었거든요. 저게 골낸 게 아니고 무엇이겠소?"
내가 크게 웃었더니, 민영감이 또 말하였다.
"꼭 퉁소 부는 놈만 성난 게 아니라오. 피리 부는 놈은 얼굴을 돌리고 우는 듯하고, 장구를 치는 놈은 이마를 찌푸린 채 시름겨운 듯하다우. 자리에 앉은 사람들이 모두 입을 다물고 마치 무서운 일이라도 난 듯, 아이와 종놈들까지도 웃지 못하고 말도 못하게 되었으니, 이런 음악으로 어찌 기쁠 수 있겠소?"
나는 곧 그들을 돌려보내고 민영감을 맞아들여 앉혔다. 그는 비록 몸집이 작았지만, 흰 눈썹이 눈을 덮었다. 그가
"내 이름은 유신이고, 나이는 일흔세 살이라우."
하고 스스로 말하였다. 그리고는 나에게
"당신은 무슨 병이 들었수? 머리가 아픈거유?"
하고 물었다. 내가
"아니오."
대답했더니, 그는 또
"배가 아픈 거유?"
하고 물었다. 내가 또
"아니오."
대답했더니, 그가 말했다.
"그렇다면 당신은 병이 아니라오."
그는 곧 지게를 열고, 들창을 걷어 괴었다. 바람이 소슬하게 불어오자 내 마음이 차츰 시원해져서, 예전과 확실히 달라졌다. 그래서 민영감에게 말하였다.
"나는 특히 음식 먹기를 싫어하고, 밤에는 잠을 못 잔다오. 이게 바로 병이지요."
민영감이 몸을 일으켜 나에게 치하하였다. 내가 놀라면서
"영감님, 무엇을 치하하신단 말이오?"
하고 물었다. 그가 말하였다.
"당신은 집이 가난한데 다행히 음식 먹기를 싫어한다니, 살림살이가 나아지지 않겠소? 게다가 잠까지 없다니, 낮밤을 아울러서 나이를 갑절이나 사는 게 아니겠소? 살림살이가 늘어나고 나이를 갑절으로 산다면, 그야말로 수(壽)와 부(富)를 함께 누리는구려."
얼마 뒤에 밥상이 들어왔다. 나는 얼굴을 찌푸리고 숟가락을 들지 않았다. 이것저것 골라서 냄새만 맡을 뿐이었다. 민영감이 갑자기 크게 성내며 일어나 가려고 하였다. 나는 깜짝 놀라서
"영감님, 왜 노해서 가시렵니까?"
물었다. 민영감이 말했다.
"당신은 손님을 불렀으니 손님에게 먼저 음식을 권해야지. 어째서 혼자 먹으려고 하오? 이건 나를 대접하는 도리가 아니라오."
나는 사과하면서 민영감을 붙들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빨리 밥상을 올리게 하였다. 민영감은사양하지 않고, 팔뚝을 걷어붙였다. 숟가락과 젓가락에 음식을 가득 올렸다. 나는 저절로 입안에 침이 흘렀다. 마음이 시원해지고, 코밑이 트였다. 그제야 옛날처럼 밥이 먹혔다.
밤이 되자, 민영감은 눈을 감고 단정하게 앉았다. 내가 그에게 무슨 이야기를 걸었지만, 그는 더욱 입을 다물었다. 나는 몹시 무료하였다. 한참 뒤에 민영감이 별안간 일어나서 촛불 똥을 긁어 버리며 말하였다.
"내 나이가 젊을 때엔 눈에 스치는 글마다 곧 외웠지만, 이젠 늙었다오. 그래서 당신과 내기 약속을 해 보리다. 평생 보지 못한 책을 뽑아 내어 각기 두세 번 눈으로 훑어본 뒤에 외워 보려오. 만약 한글자라도 잘못되면 벌을 받기로 약속하는 게 어떻겠소?"
나는 그가 늙었음을 기화로 하여
"그러지요."
대답하고는 곧 시렁 위에서 {주례}를 뽑았다. 그 책에서 민영감은 [고공]편을 골랐고, 나에게는 [춘관]편이 돌아왔다. 잠깐 뒤에 민옹이
"나는 벌써 다 외웠다우."
하고 나를 일깨웠다. 나는 아직 한차례도 훑어보지 못한지라, 깜짝 놀라서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청하였다. 영감은 자꾸만 재촉하여, 나를 곤경에 빠뜨렸다. 나는 그럴수록 외울 수가 없었다. 졸리운 듯하다가, 그만 잠이 들었다. 하늘이 밝은 뒤에야 민영감에게
"어제 외운 글을 기억하시오?"
물었다. 민영감이 웃으면서 말했다.
"나는 처음부터 외우지 않았다오."

하루는 밤늦도록 민영감과 이야기하였다. 민영감이 같이 앉은 손님들에게 농담도 하고 꾸짖기도 했는데, 민영감을 막아내는 자가 아무도 없었다. 한 손님이 민영감을 궁색하게 하려고 물었다.
"영감님은 귀신을 보았소?"
"보았지."
"귀신은 어디에 있소?"
민영감이 눈을 부릅뜨고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한 손님이 등잔 뒤에 앉아 있었는데, 그를 향하여 소리쳤다.
"귀신이 저기 있다."
그 손님이 성내면서 민영감에게 따졌다. 민영감이 말하였다.
"밝으면 사람이 되고, 어두우면 귀신이 되는 법이라오. 지금 당신은 어두운 곳에 있으면서 밝은 곳을 살피고, 얼굴을 숨긴 채로 사람을 엿보았으니, 어찌 귀신이 아니겠소?"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웃었다. 손님이 또 물었다.
"영감님은 신선도 보았소?"
"보았지."
"신선은 어디에 있소?"
"집이 가난한 자가 바로 신선이라오. 부자들은 늘 속세를 그리워하는데, 가난한 자는 언제나 속세를 싫어하니, 속세를 싫어하는 게 신선이 아니고 무엇이겠소?"
"영감님은 나이 많은 사람도 보았겠구려?"
"보았지. 내가 오늘 아침 숲 속에 들어갔더니, 두꺼비와 토끼가 제각기 나이가 많아도 다투더군. 토끼가 두꺼비더러
'내가 팽조와 동갑이니까, 너 같은 자야 말로 후생이다.'
하고 말하니까, 두꺼비가 머리를 숙이고 훌쩍훌쩍 웁디다. 토끼가 깜짝 놀라서
'왜 그리 슬퍼하냐?'
물었더니, 두꺼비가 이렇게 말합디다.
'나는 저 동쪽 이웃집 어린아이와 동갑이었는데, 그 아이는 다섯 살 때에 벌써 글을 읽을 줄 알았단다. 그는 아득한 옛날 천황씨(天皇氏) 때에 태어나서 인년(寅年) 역사를 비롯하여 수많은 왕과 제(帝)를 거쳤으며, 주(周)나라에 이르러 왕통이 끊어지자 책력 하나를 이루었지. 진(秦)나라 때에 윤달이 들었고, 한(漢) 당(唐)을 거쳐 아침엔 송(宋)나라가 되었다가 저녁엔 명(明)나라가 되었지. 모든 사변을 겪으면서 기쁜 일, 놀라운 일, 죽은 이를 슬퍼하는 일, 가는 이를 보내는 일 등으로 지루한 세월을 보내다가 오늘에 이른 것이야. 그런데도 오히려 귀와 눈이 밝아지고, 이와 털이 나날이 자란단 말이야. 저 아이처럼 나이 많게 살았던 자는 없을 거야. 그런데 팽조는 겨우 팔백 살을 살다가 일찍 사라졌다니, 그는 세상을 겪은 것도 많지 못하고, 일을 경험한 것도 오래지 못했을 거야. 그래서 내가 그를 슬퍼하는 거지.'
결국 토끼가 두 번 절하고 뒷걸음질치면서
'네가 내 할아버지뻘이다.'
합디다. 이로써 본다면 글 많이 읽은 자가 가장 목숨이 긴 거라우."
"그럼 영감님은 가장 훌륭한 맛도 보았겠구려?"
"보았지. 하현달이 되어서 썰물이 물러나면, 바닷가의 흙을 갈아서 염전을 만들거든. 그 갯벌을 구워서 성긴 것으로는 수정염을 만들고, 고운 것으로는 소금을 만들지. 온갖 맛을 조화시키면서, 소금 없이 어찌 맛을 내겠소?'
그러자 모두들 말하였다.
"좋소. 그러나 불사약은 영감님도 결코 못 보았겠죠?"
민영감이 웃으면서 말하였다.
"이거야말로 내가 아침저녁으로 늘 먹는 것인데, 어찌 모르겠소? 큰 골짜기 굽은 소나무에 달콤한 이슬이 떨어져 땅속으로 스며든 지 천 년만에 복령(茯笭)이 되지. 인삼 가운데는 신라의 토산품이 으뜸인데, 단정한 모양 붉은 빛에 사지가 갖추어진 데다, 쌍갈래로 땋은 머리는 아이처럼 생겼지. 구기자가 천년 되면 사람을 보고 짖는다우. 내가 일찍이 이 세가지 약을 먹고는 백 일이나 음식을 먹지 못하다가, 숨결이 가빠져서 죽을 지경에 이르렀지. 이웃집 할미가 와서 보고는 이렇게 탄식합디다.
'자네 병은 굶주렸기 때문에 생겼지. 옛날에 신농씨(神農氏)가 온갖 풀을 다 맛보고 비로소 오곡(五穀)을 뿌렸으니, 병을 다스리려면 약을 쓰고 굶주림을 고치려면 밥을 먹어야 한다네. 이 병은 오곡이 아니면 고치기 어렵겠네.'
나는 그제야 쌀로 밥을 지어먹고는 죽기를 면했다우. 불사약치고 밥보다 나은 게 없는 셈이지. 그래서 나는 아침에 한 그릇, 저녁에 또 한 그릇 먹고, 이제 벌써 일흔이 넘었다우."
민영감은 언제나 말을 지루하게 늘어놓았지만, 끝에 가서는 모두 이치에 맞았다. 게다가 속속들이 풍자를 머금었으니, 변사(辯士)라고 할 만하였다. 그 손님도 물을 말이 막혀서 다시금 따지지 못하게 되자, 벌컥 화를 내면서
"그럼 영감님도 역시 두려운 게 있소?"
하고 물었다. 민영감이 잠자코 있다가 별안간 목소리를 높여서 말하였다.
"나 자신보다 더 두려운 건 없다우. 내 오른쪽 눈은 용이고, 왼쪽 눈은 범이거든. 혀 밑에는 도끼를 간직했고, 굽은 팔은 활처럼 생겼지요. 내 마음을 잘 가지면 어린아이처럼 착해지지만, 까딱 잘못하면 오랑캐도 될 수 있다우. 삼가지 못하면 장차 제 스스로 물고 뜯고, 끊고 망칠 수도 있는 거지요. 그래서 옛 성인의 말씀 가운데도 '자신의 사욕을 극복하여 예법으로 돌아간다"고 하였고, "사심을 막고 참된 마음을 지닌다."하였지요. 성인께서도 스스로를 두려워하신 거라우."
민 영감은 한꺼번에 여러 가지 질문을 받았지만, 그의 대답은 언제나 메아리처럼 빨랐다. 끝내 아무도 그를 골탕 먹이지 못했다. 그는 자기 자신을 자랑하기도 하고, 기리기도 했으며, 곁에 앉은 사람을 놀리기도 하였다. 사람들이 모두 허리를 잡고 웃어도, 민영감은 얼굴빛 하나 변하지않았다. 어떤 사람이
"해서 지방에 황충(蝗蟲)이 생겨서, 관청에서 백성들더러 잡으라고 감독한답디다."
하고 말하자, 민영감이 물었다.
"황충을 잡아서 무엇한다우?"
"이 벌레는 누에보다도 작은데, 알록달록한 빛에 털이 돋혔지요. 이놈이 날면 명(螟)이 되고, 붙으면 모( )가 되어서 우리 곡식을 해치는데 거의 전멸시키지요. 그래서 잡아다가 땅속에 묻는답니다."
민영감이 말했다.
"이 따위 조그만 벌레를 가지고 걱정할 게 무어람. 내 보기엔 종로 네거리에 한길 가득히 오가는 것들이 모두 황충일뿐입니다. 키는 모두 일곱 자가 넘고, 머리는 검은 데다 눈은 빛나지요. 입은 주먹이 드나들 만큼 큰 데다 무슨 소린지 지껄여 대고, 구부정한 허리에 발굽이 서로 닿고 궁둥이가 잇달아 있습니다. 이놈들보다 더 농사를 해치고 곡식을 짓밟는 놈들이 없다우. 내가 그놈들을 잡고 싶은데, 큰 바가지가 없는 게 한스럽구려."
마치 이런 벌레가 참으로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크게 두려워했다.
어느 날 민영감이 찾아왔다. 내가 그를 바라보고 은어(隱語)로
"춘첩자(春帖子) 방제( 啼)"
라고 말했다. 민영감이 웃으면서 말하였다.
"'춘첩자는 문(門)에다 붙이는 문(文)인, 바로 나의 성인 민(閔)일 게고, 방( )은 늙은 개니까 나를 욕하는 말일 테지. 제(啼)는 내 이빨이 빠져서 말소리가 웅얼대는 게 듣기 싫다는 뜻일 테지. 당신이 만약 '방'이 두렵다면, 견(犬)을 버려야 할거요. 또 제가 듣기 싫다면 그 구(口)를 막아 버려야 하겠지. 그러면 그 너머지 글자인 제(帝)는 조화(造化)를 뜻하고, '방'은 큰 물건을 뜻하지요. 그렇게 해서 '제'자에다 '방'자를 덧붙이면, '크다'는 뜻이 되는 동시에 그 글자 모양은 방(帝尨)이 되겠지요. 그렇다면 당신이 나를 모욕한 게 아니라, 도리어 나를 칭찬한 게 된다우."
그 이듬해에 민영감이 세상을 떠났다. 세상 사람들은
"민영감이 비록 지나치네 넓고 기이하며, 얽매이지 않고 호탕하지만, 그의 성격은 깨끗하고 곧으며, 즐겁고도 밝다. {주역}에 밝고, 노자(老子)의 글을 좋아했으며, 그가 대체로 엿보지 못한 글이 없다."
고 말했다.
그의 두 아들이 모두 무과(武科)에 올랐지만, 아직 벼슬하지 못하였다. 올해 가을에 내 병이 더친 데다, 민영감도 다시는 만나 볼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그와 더불어 나누었던 은어(隱語), 해학(諧謔), 풍자(諷刺) 등을 모아서 이 {민옹전}을 지었다. 때는 정축년(1757) 가을이다. 이에 시를 지어서 민영감의 죽음을 슬퍼한다.

아아, 민영감이시여
괴상하고도 기이하며, 놀랍고도 깜찍스럽구려
기쁘고도 노여우며, 또한 얄밉구려
저 바람벽의 까마귀가 끝내 새매로 화하지 못했구려
영감께선 뜻을 지닌 선비였건만
마지막 늙어 죽을 때까지 쓰이지 못했구려
내 그대를 위해 전을 지으니
아아, 그대는 오히려 죽지 않을 거외다.

-'함께하는 고전여행'에 실린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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