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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춤의 이해
2003.12.10 | 조회수 : 2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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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 탈 개관

1) 탈(가면) 이란?

탈이란 얼굴을 가리는 특이한 조형물로서 특정한 목적과 여러 쓰임새를 갖는다. 탈은 얼굴을 가릴 뿐만 아닐라 본래의 얼굴과는 다른 인물이나 동물 또는 초자연적인 존재 등을 나타내는 가장성(꾸밈)을 갖는다. 또한 탈은 어떠한 경우든 똑같이 은폐와 신비화(과장)의 역할을 하는 것일라야 하며, 상징과 표현일라는 두 가지의 요소를 갖게 된다.

2) 탈이 나오게 된 까닭

탈은 처음에 종교의식에서부터 나왔다고 할 수 있다. 원시시대의 종교의식에서 사람은 탈과 춤이라는 이중의 주술로써 초인간적인 존재가 되고자 하였으며, 따라서 종교적인 감정과 정서를 나타내고 강조하는 방법으로서 탈과 춤은 보편적이며 필수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사람이 신의 탈을 쓰면 그는 이미 사람 이상의 존재인 신이 되고, 죽은 이의 탈을 쓰면 그는 저승 세계와의 중계자로서 살아 있으면서도 죽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사람이면서도 신이요, 살아 있으면서도 죽은, 이 모순은 초인간적인 신비성이며 탈이 갖는 주술성이다. 이렇게 주술적이던 탈이 훗날 연극에 쓰이게 된 뒤에도 이와 같은 이중성과 모순성의 동시적 존재성은 지속되어 왔다. 줄ㄹ여서 말하자면 탈은 ① 외부의 적이나 악령을 위협하기 위해서 ② 신의 존재를 나타내기 위해서, ③ 죽은 사람을 숭배함으로써 죽은 사람과 비슷해지기 위해서, ④토테미즘의 신앙에서 여러 가지 동물로 가장하기 위한 짓시늉 등에서 발생 까닭을 찾을 수 있다.

3) 부르는 이름

한자 말 : 면, 면구, 가면, 대면(代面), 대면(大面), 가두, 가수, 광대

우리말 : 초라니, 탈, 탈박, 탈바가지

(1) 광대 : 광대란 본디 얼굴에 환칠을 하는 것을 이르던 말이다. 그러다가 점차 탈을 가르키게 되고 (『시용향학보』의 「나례가」), 따라서 탈을 쓰고 놀이하는 사람까지 광대라고 부르 게 되었다 (『고려사』의 「전영보전」에서 - '가면위희자」). 오늘날의 민속극에서는 '하회 별신굿탈놀이'에서 '각시광대', 양반광대' 등으로 탈놀이 하는 사람을 가르키며, 영남지 방의 낙동강 서쪽 일대에서도 '가산오광대', '통영오광대'등을로 탈춤을 가르키는 이름으 로 전하고 있다

(2) 초라니 : 정약용의 『목민씸서』에서는 꼭두각시 놀음을 '초란이' 또는 '산대' 라고 적고 있으며11) 초남선이 펴낸 『신자전』에서는 '진축려동 아이초란이'라고 했다. 이를 통하여 붉은 옷을 입고 소귀면을 착용하고 구나에 참가한 12세 - 16세의 사람들을 '아이초란이' 라고 하였으며, 이것이 20세기초에는 구나에 쓰이는 소귀면이었음을 알 수 있다. 오늘 날의 『국어사전』(교학사 편)에서는 '초란이' 대신 '초라니'를 표준어로 적고 있으며, 그 뜻은 '괴상한 여자 모양의 탈을 쓰고 붉은 저고리에 푸른 치마를 입고 긴 대의 깃발 을 가졌음. 소매'라고 풀이하고 있다.

(3) 꼭두 : 『훈몽자회』에서는 괴뢰, 즉 '꼭두각시'를 가르키고 『역어유해』(1690)에서는 탈을 가르키는 말로 풀이하여, 목우와 탈을 엄격히 구별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4) 탈 : 탈이란 말은 '가면'의 뜻 외에도 '배탈나다', '큰 탈나다'에서처럼 병이나 재앙의 뜻을 가지고 있다. 이 '탈(가면)'과 '탈(재앙"의 혼동 내지 이중성은 재앙이나 병을 가져 오는 역신이나 악신을 쫓으려 할 때, 그보다 더 무서운 마신의 힘을 빌려야 한다는 믿음으 로 무서운 탈을 쓰는 데서부터 생겨났다고 볼 수 있다.

4) 탈의 종류

(1) 신앙탈

① 벽사탈 : 악귀를 쫓기 위해 얼굴에 쓰는 구나탈

② 의술탈 : 무당의 직능을ㄹ 사제자와 의무와 예언자 셋으로 나눌 때, 병마를 물리치는 전문가로서 의무가 쓰는 탈. 악령이나 부정한 귀신이 붙은 탈은 이것을 쓰는 사람으로 하여금 미쳐 날뛰는 주력을 크게 갖고 있다고 믿었고, 탈ㄹ을 쓰면 사람 밖의 힘, 즉 초인간적인 영혼이 와 붙는다고 믿는 데서 생겨났다.

③ 신성탈 : 일정한 곳에 놓아 두고 제사만 지내는 탈

(2) 예능탈 : 춤 출 때나 연극을 할 때 얼굴ㄹ에 쓰는 탈

① 무용탈 : 처용무탈

② 민속극탈 : 산대도감극, 해서 탈놀이, 들놀음, 오광대 탈놀이

③ 민속놀이탈 : 사자탈

5) 탈이 쓰이는 시기

우리나라에서 탈에 제사를 지내거나, 탈을 얼굴에 쓰고 하는 놀이는 대개 그 지방에서 신앙적으로 어떤 의의가 있을 때에 행해진다. 그러므로 일정한 신역(신성한 곳)에 안치되어 있는 신성탈은 무격들이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그 탈에 고사를 지낸다. 그리고 예능탈의 경우는 아래와 같다.

* 산대탈 : 음력 오월 단오와 기타 명절 (외국 사신을 접대할 때, 군주의 행차에는 수시로)

* 처용무탈 : 궁중 의식 때

* 해서탈 : 단오 (외국 사신을 접대할 때, 군주의 행차에는 수시로)

* 성황신제탈(핳회, 병산, 주곡) : 음력 정월 15일의 성황신제 때

* 강릉의 탈 : 단오

2. 원리와 특징

탈춤은 우리나라의 민속문화 속에서 체계적으로 발전되어 온 극양식이다. 모든 문화양식이 그러하듯 탈춤 역시 그것이 만들어진 시대상황들의 반영물이다. 탈춤의 형성기를 조선 후기로 추정한다면 탈춤에는 조선 후기의 제도, 문화의 여러 모습들이 담겨 있다. 조선 중기부터 시작된 신분질서의 붕괴는 조선 후기로 넘어오면서 더욱 깊어 갔다. 이런 신분질서의 붕괴가 탈춤의 양반마당에 잘 나타나 있다. 말뚝이의 공격에 맥을 못 추는 양반의 모습은 바로 당시의 신분질서가 무너지는 단적인 보기다.

이는 양반사회 안의 위계질서가 무너짐으로 해서 탈춤의 소재가 된 것이지만, 민중의식의 고양도 이런 내용이 채워지는 데 한몫을 하였다.

탈춤의 구경꾼인 민중은 이러한 계층 사이의 문제를 알고 있는 것이다. 춤꾼과 구경꾼이 함께 하는 상황은 탈춤의 현장성을 살린다. 살아 있는 현장성은 구경꾼의 비판적 시각을 필요로 하며, 구경꾼 스스로의 일상생활이나 사회체제에 관한 비판적 시각을 더욱 날카롭게 한다. 비판의식의 강화는 그 시대의 문제점을 없애고 참다운 사회를 이룩하는 데 한몫을 한다.

희극은 바로 이러한 비판의식이 모자랄 때는 생겨날 수 없는 갈래이다. 사회체제에 대한 불만이나 정치적 불만은 비판의식이 투철한 민중이 없을 때에는 풀리지 않는다. 웃음은 비판의식이 없을 때에는 생겨나지 않으며, 풍자는 사회를 바꾸는 기능을 맡는다. 풍자는 비판적 비교를 통해서 나타난다.

탈춤은 희극이다. 그러므로 탈춤에는 웃음이 있다. 계층 사이의 갈등을 두드러지게 나타내는 양반마당이나, 가족 사이의 윤리를 다루고 있는 할미영감마당도 웃음을 자아낸다. 할미영감마당은 내용상 비극의 색채를 띠고 있으나, 이 마당은 눈물을 뛰어넘어 웃음을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비판적 현실의 비판적 초월'이야말로 조선 후기 민중들의 참모습이다.

탈춤의 기본적 성격 가운데 하나는 신명성이다. 춤꾼과 구경꾼이 함께 어우러지는 집단적 신명은 탈춤의 중요한 맛이다. 서구 연극의 구경꾼이 연극 공연에 일정한 거리를 두는 반면에, 탈춤의 구경꾼은 궁연 속에 들어가 있다. 탈춤에서 연희자와 구경꾼이 함께 하고 있으므로, 춤꾼과 구경꾼의 집단적 신명도 하나의 중요한 목표이다.

탈춤의 이러한 신명은 닫힌 연극인 서구 연극과는 달리 열린 연극이 되게 한다. 꾸경꾼과 춤꾼이 다 함께 어우러지는 탈춤이야말로 탈춤의 중요한 원리이자 특징이다. 탈춤은 대동굿판 속의 놀이, 놀이(극)를 통한 대동굿판의 강화라고 할 수 있겠다.

3. 기원과 지역별 특성

1) 탈춤의 뿌리

(1) 산대희 기원설

산대회에서 탈춤이 시작되었다는 견해이다. 고려시대에 발달하여 조선 초까지 이어진 산대희는 토화(불 내뿜기), 근두(곤두박질), 주질(줄타기), 농영(방울받기) 따위의 규식지희와 즉흥적인 재담이나 화술로써 어떤 사건이나 상황을 연출해 보이는 소극의 하나인 소학지희로 구성된 연희다. 이것이 나중에 산대도감극으로 발전하는데 산대도감극이라는 이름은 조선 전기 궁중의 나례를 관장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던 나례도감이나 산대도감의 관장 아래에 있으면서 산대라고 불린 무대에서 상연되던 때의 호칭에서 나온 것이다. 그런데 1634년(인조 12)에 산대극의 공연을 중단하게 되자 산대의 공연에 동원되었던 광대들이 각처로 흩어져 탈춤에 종사하게 되면서 점차 민중오락을 위한 민속극으로 뿌리 내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2) 기악 기원설

백제인 미마지가 남중국의 오날라에서 배워 일본에 전했다는 기악이 우리 탈춤의 출발이라는 견해다. 『일본서기』에 의하면 백제 무왕 13년(612)의 일인데 13세기 일본 문헌인 『교훈초』에 전하는 기악의 내용이 오늘날의 양주별산대놀이와 봉산탈춤과 비슷하므로 기악이 현존탈춤의 원형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원래 불교 선전극이던 것이 중을 풍자하는 연극으로, 묵극에서 화극으로 바뀐 과정이 명확하게 검증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탈춤의 기원이 아닌 전승 과정상의 발전요인이나 조건, 계기로 풀이되는 것이 옳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3) 풍농굿 기원설

마을의 안녕과 풍농을 기원하는 굿에서 생겨났다는 견해이다. 서낭굿 같은 것이 대표적인 보기인데 풍물패의 풍물잽이들이 신의 탈을 쓴 사람들과 함께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고, 놀이를 벌이는 이러한 굿이 바로 탈춤의 기원이라는 것이다. 즉 풍물잽이들은 탈춤의 반주자가 되고, 신의 탈이 양반이나 각시 따위의 사람 탈로 바뀌고, 신들 사이의 혼인이나 싸움이 사람들 사이의 혼인이나 싸움으로 이해되는 것이 탈춤의 출발이라는 것이다.

2) 탈춤의 분포와 지역별 특성

(1) 북방계 - 북청사자놀음, 봉산탈춤, 해주탈춤, 강령탈춤, 은율탈춤

* 봉산탈춤 : 해서지방의 대표적인 탈놀이로 춤이 주가 되고 춤사위가 활발하며 몸짓과 재담, 노래로 이루어진다. 쓰이는 악기는 피리, 젓대, 북, 장구, 해금 등이며 장단은 염불 장단, 타령장단, 굿거리장단 등이다. 배역은 36역이고, 26개의 종이로 만든 탈이 있으며 10개는 대용한다. 모두 7과장 5거리로 짜여져 있다.

제1과장 사상좌춤

제2과장 팔목중춤(* 팔목중춤놀이 *법고놀이)

제3과장 사당춤

제4과장 노장춤 (*노장춤놀이 *신장수춤놀이 *취발이춤놀이)

제5과장 사자춤

제6과장 양반춤

제7과장 미얄춤

각지역별 현존 탈춤 분포도

(2) 중부계 - 양주별산대놀이, 송파산대놀이, 남사당 덧뵈기

* 송파산대놀이 : 놀이는 길놀이(앞놀이)와 탈놀이(판놀이)로 짜여져 있으며, 탈놀이 시작 전 '탈고사'를 지낸다. 가장 세분화된 춤사위를 갖고 있으며, 반주악기는 피리 2, 젓대 1, 해금 1, 장구 1, 북 1 등이다. 장단은 주로 타령, 굿거리, 염불장단 등 이다. 탈은 봉산탈춤보다 사실적이며 주로 바가지로 되어 있고 36역 32탈이 있고 4개는 겸용한다. 놀이마당을 세분하면 아래와 같다.

제1마당 상좌

제2마당 옴중, 먹중

제3마당 연닢, 눈금재기

제4마당 애사랑 북놀이

제5마당 팔먹 곤장놀이

제6마당 신주부 침 놀이

제7마당 노장

제8마당 신장수

제9마당 취발이

제10마당 말뚝이

제11마당 샌님, 미얄, 포도부장

제12마당 신할애비, 신할미

(3) 영동계 - 강릉관노놀이, 하회별신굿놀이

* 하회별신굿 : 경북 안동군 풍천면 하회동에서 10년에 한 번씩 또는 신탁에 따라 임시로 거 행되는 '하회별신굿'은 그 준비를 위해 음력 12월 말부터 시작한다. 산주(주제자) 는 먼저 부정이 없는 목수를 골라 당산에서 서낭대와 성주대(내림대)를 마련한 다. 정월 초이틀 아침에 산주와 무녀와 공대들이 서낭당에 제수를 차려 놓고 강 신(신내림)을 빈다. 서낭대에는 오색포(홍, 청, 황, 백, 녹)를 늘이고 꼭대기에 당 방울 단다. 신이 내리면 상당(서낭당)에서 하당(국사당)과 삼신당을 거텨 구동사 앞놀이 마당에 이르러 서낭대를 세워 신령이 울림으로써 별신굿 놀이가 시작된 다. 놀이는 다음 순으로 이어진다.

① 강신

② 무동마당

③ 백정마당

④ 할미마당

⑤ 파계승마당

⑥ 양반선비마당

⑦ 혼례마당

탈놀이에 쓰이는 탈은 주지 2개, 각시, 중, 양반, 선비, 초랭이 따위이며, 부네, 백정, 할미의 10종 11개가 국보 제 121호로 되어 있다.

(4) 남방계

① 들놀음(야유) :동래 들놀음, 수영들놀음 → 낙동강 오른편

* 수영들놀음 : 부산시 동래구 수영동에서 전해 내려오는 탈놀이로 음력 정월 대보름 산신제와 함께 거행되며 주로 덧뵈기 춤에 장단은 '응박 캥캥'이라 부르는 굿거리 장단으로 되어 있다. 지신밟기로 비용을 만들며 길놀이가 발달되어 있다. 탈은 주로 바가지 탈이며 사자, 담보는 대소쿠리, 제대각시는 종이탈이 다. 장단은 덧뵈기와 굿거리며, 탈놀음의 순서는 문둥이마당, 양반마당, 영 노마당, 할미 영감마당, 사자춤마당으로 짜여 있다.

② 오광대 놀이 : 통영오광대, 고성오광ㄷ, 가산오광대, 진주오광대

* 고성오광대 : 경남 낙동강 상류 초계 밤마리에서 비롯된 탈놀음의 한 갈래로 대보름 저녁 장터에 장작불을 피워 놓고 놀았다. 반주 악기는 꽹과리, 장구, 북, 징 따위의 타악기 위주로 되어 있고, 장단은 주로 굿거리와 덧뵈기 장단이다. 탈은 원래 나무로 많이 만들어졌으나 거의 사리지고 지금은 주로 종이탈과 바가지탈을 쓰고 있다. 곳에 따라서는 지금도 나무탈을 쓰기도 한다. 20여 19탈 1겸용으로 되어 있고 모두 5마당으로 짜여지며, 탈놀음 과정은 문둥북춤마당, 오광대마당, 비비마당, 승무마당, 제밀주마당으로 짜여 있다.

3) 관객의 의식

우리의 탈놀이는 많은 사람들의 자발적인 창여와 의지에 의해 꾸며진 독창적인 극형식이며, 구경꾼들 스스로가 만들어 나가는 양식이기 때문에 만든 이와 즐기는 이를 엄격히 나눌 수가 없다. 아울러 탈놀이에는 고정된 틀이 없으며, 작품의 내용이 허구적인 사실을 꾸며서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연장으로서, 현실 속에서 함께 놀이하는 가운데 만들어지는 것이므로 그만큼 여러 가지의 가능성과 창조적인 생명력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탈춤 속에 깔린 의식들로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1) 벽사의식 - 귀신을 물리치는 의식

(2) 파계승에 대한 풍자 - 지배이념의 무너짐을 폭로

(3) 지배계급(양반)의 신분적 특권과 무능력을 풍자

(4) 처첩 사이의 갈등 묘사 - 남성의 부당한 횡포 고발

(5) 서민들의 삶과 애환을 담아냄

4. 탈춤 속의 탈

원시 공동체 사회로부터 나오기 시작하여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거의 모든 사람의 모임에서 써왔던 탈은, 사람이나 동물 또는 초자연적인 존재 따위의 모습을 만들어 몸에 붙이거나 일정한 곳에 모셔 두기도 하면서 여러 가지 목적에 쓰여 왔다. 우리나라에서도 탈 또는 탈 쓰임의 흔적은 선사시대의 패총이나 삼국시대의 무덤 벽화에서뿐만 아니라 현존하는 문헌이나 그림, 와당(기와), 풍물, 탈춤 따위에 두루 남아 있다. 이러한 우리의 탈은 기능적인 측면에서 흔히 신앙탈과 예능탈로 나뉘며, 다시 앞말은 벽사탈, 의술탈, 영혼탈, 신성탈 따위로 뒷말은 무용탈, 민속놀이탈, 민속극탈 따위로 이루어져 있다.

그 가운데 질과 양의 면에서 우리 탈의 큰 흐름을 이룬다 하여도 지나친 말이 아닐 정도인 민속극탈, 다시 말해서 전통 탈춤에 쓰여진 탈은 현존하는 14개 탈춤에 240여 개에 이르고 있다. 12)

* 봉산탈춤 탈, 강령탈춤 탈, 은율탈춤 탈

* 양주별산대놀이 탈, 송파산대놀이 탈

* 수영들놀음 탈, 동래들놀음 탈

* 가산오광대 탈, 동영오광대 탈, 고성 오광대 탈

* 하획별신굿 탈, 강릉관노희 탈, 북청사자놀음 탈, 남사당덧뵈기 탈

이러한 우리의 전통 탈춤 속의 탈에 대해, 어떤 이는 "장인적 입장이 아니라 순전히 유희적이고 즉흥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탈의 상징성이 비교적 약하고 신비함이 적다"고도 하지만, 나오는 인물을 유형화하여 회화적으로 나타낸 것은 가볍게 다루어질 수 없는 특징이라 하겠다.

(1) 탈을 만드는 재료로는 주로 바가지, 나무, 종이, 모피 따위가 쓰여졌으며, 생활 주변에서 쉽게 얻을 수 있었던 모자나 탕건, 나무껍질, 콩, 새끼줄, 털, 헝겊, 실 따위가 붙이는 재료로 쓰였다. 탈춤의 탈에 가장 손쉽게 쓰인 바가지는 단순히 그 위에 색을 입혀 쓰기도 하였지만(간산오광대의 문둥이탈), 양주별산대놀이의 탈들처럼 소나무 껍질을 가공학나 실을 꼬아서 얼굴에 붙여 입체감을 준 뒤, 한지를 몇 겹 발라 채색하여 깊이 있는 조형성을 보여 주기도 한다. 나무를 쓴 경우로는 오리나무나 피나무를 깍아 옻칠한 뒤에 색칠한 하회별신굿탈이 잘 알려져 있는데, 그 밖에도 대바구니(가산오광대의 영노탈, 수영들놀음의 사자탈)를 쓰기도 하였다. 종이는 ① 봉산탈춤과 강령탈춤처럼 먼저 흙으로 모양을 빚는 과정을 거치거나, ② 단순히 마분지(가사오광대의 오방신무장탈, 할미탈, 마당쇠탈, 수영들놀음의 제대각시탈) 위에 색을 입혀 쓰는 세 가지 방법이 쓰여졌다. 짐승의 털 달린 가죽으로 만든 것으로는 동래들놀음 셋째 양반인 모양반탈이 그 좋은 보기이다.

(2) 우리 탈춤의 탈들은 대부분 움직이지 않도록 만들어져 있지만, 그 가운데 특별히 움직이도록 만들어진 것도 있다.

* 눈 : 봉산탈춤 사자탈, 양주별산대놀이 눈끔쩍이탈

* 입 : 북청사자놀음의 사자탈, 통영오광대의 영노탈

* 턱 : 하회별신굿의 선비탈, 양반탈, 중탈, 백정탈, 수영들놀음의 수양반탈, 그리고 턱부분을 제거하여 연희자의 입과 탈속에서 살아 움직이도록 한 것(하회별신굿의 이매탈, 통영오광대의 양반탈, 고성오광대의 초라니탈)도 있다.

(3) 형상은 대체로 정상적이거나 비정상적인 사람의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 많으며, 사자나 담비, 범, 원숭이 같은 실제 동물(통영오광대의 사자탈, 담비탈, 수영들놀음의 사자탈과 북청사자놀음의 사자탈, 봉산탈춤의 원숭이탈, 수영들놀음의 범탈)이나 가상적인 존재(가산오광대의 오방신무장탈, 강릉관노희의 시시딱딱이탈)를 나타낸 것도 있다.

(4) 탈의 크기는 얼굴에 달기 쉽도록 얼굴 크기로 한 것이 많지만, 상당히 큰 것(동래들놀음의 말뚝이탈, 가산오광대의 말뚝이탈과 양반탈, 통영오광대의 말뚝이탈)도 있고, 몸의 일부를 가리는 것도 있다. 특히 민중의식을 대변하는 존재들의 탈이 대체 크게 만들어진 것은 또 다른 뜻을 던져 주는 것 같다.

(5) 민중사의 한 표상으로서 탈의 표정을 나타내는 기법ㅇ츤 매우 사실적인 것(동래들놀음의 양반탈)에서부터 추상성이 아주 강한 것(김해오광대의 영노탈)까지 대단히 다양한 편이며, 유형적 존재를 나타내는 것은 일본이나 중국과 다르게 아주 익살스럽고 상징적이다

이러한 특징을 지닌 우리의 탈춤 속의 탈들은 바로 '지난 역사를 꾸며온 주인공들의 얼굴'이며, 이전 시대의 유산으로 남아 있는 것이지만, 좋은 것은 살리고 현대의 새로운 기법을 더하여 '이 시대 우리의 살아 있는 얼굴'을 탈로 만드는 것은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 생각된다.

5. 탈춤 속의 춤

한 집단의 공동체적 삶의 밑바탕에는 늘 문화라는 정신적 산물이 자리잡고 있다. 그 문화는 다른 집단과의 끊임없는 교류를 통하여 때로는 앞서 나가기도 하고 때로는 뒷걸음 치기도 한다. 어떤 집단이 갖고 있는 본래의 문화가 튼튼한 맥을 이루고 있을 때에는 다른 집단의 것을 받아들이며 그 맥의 깊이를 더해 갈 수 있다고 본다. 다른 문화의 충격이 지나치게 강하거나 자체 문화의 뿌리가 약할 때 그 집단은 스스로의 문화를 잃어버리게 된다.

한 집단의 문화가 사라진다는 것은 바로 그 집단의 정신세계가 사라짐을 뜻하므로, 결국 집단의 멸망으로 이어지게 됨을 우리는 긴 인류역사를 통해 잘 알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한 겨레가 뿌리 깊은 문화를 지닌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라 할 수 있다.

오천 년의 뿌리를 가진 우리 겨레의 문화는 특히 20세기에 들어 와서 큰 시련을 겪었다. 분별없이 들어오는 서구 문물, 일제의 혹독한 민족문화 없애기정책, 6.25와 같은 어려운 시기에 우리 문화의 뿌리는 상당히 흔들렸다. 연극과 춤의 경우에도 크게 다를 수 없었다. 일제에 의해 우리 민족문화 없애기 정책이 펼쳐지고 있는 가운데, 1911년 신파극의 상륙, 1920년 신극의 이입이 우리 연극에 미친 영향과, 1926년 석정한의 춤 공연으로 인한 신무용의 도입, 1965년 박외선으로부터의 현대무용 반입이 우리나라의 춤에 미친 영향은 실로 대단하다고 하겠다. 그것은 다름 아닌 우리의 전통춤과 연극의 단절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깊은 것이었다.

1960년대 이후 관이 주도하여 전통문화에 대한 복원 공연이 시작되어 그 나름의 성과를 이룩하였지만, 그것은 벌써 새로워지는 시대에 적응하지 못한 박제문화 이상의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이제 춤이라고 하면 당연히 신무용이나 현대무용을 일컫고, 연극이라고 하면 으레 서구 연극을 이야기하게 된 것이 오늘의 현실이지만, 다행스럽게도 민속탈춤과 전통극에 대하여 깊은 사랑을 가지고 그 맥을 이어 보려고 애쓰는 모습들이 보인다. 그것은 70년대에 들어서면서 일기 시작한 대학에서의 탈춤 퇴살리기운동으로 70년대 후반부터 무용계에서 서서히 일어나게 된 민속춤에의 관심 등으로 이어져 왔다.

새로운 춤과 연극이 전통문화의 단순한 복원과 재현에서 벗어나 이 시대의 삶을 담아내려는 진지한 창작활동을 펼치는 것은 우리 문화의 전통성을 이어 나가는 면에서도 바람직한 일이라 할 수 있다.

'우리 연극의 장래가 마당극에 달려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듯이, 민속춤에 뿌리를 둔 우리 춤의 세계가 우리나라 춤의 앞날을 결정하리라는 것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전통문화에 관한 올바른 이론의 정립이 없이는 전통성 회복이 어려우며, 항상 그것은 실제 작업과 맞물려 돌아갈 때만 그 현실성을 얻을 수 있게 된다. 전통문화의 겉모양에만 몰두한다거나 의식없는 맹신은 결국 헛된 일이 되고 만다.

새로운 춤과 연극운동의 뚜렷한 이론적 뒷받침은 우리의 민속춤과 민속극으로부터 뼈대를 갖추어 정리될 필요가 있다. 그러한 점에서 우리의 민속탈춤에 대한 다양하고도 깊이 있는 연구가 많이 요구된다고 하겠다.

그 동안 전통 탈놀이에 대한 좋은 연구논문도 많이 있지만, 국문학적 측면에서는 대본의 채록과 자료조사가 줄기를 이루었고, 무용학적 측면에서는 외형적인 춤사위 채보에 주로 치우쳐 왔던 것이 사실이다. 이제는 선배들이 힘들여 쌓아 온 자료와 기록을 바탕으로 다양한 측면의 미학적 연구가 이뤄져야 한다고 본다. 그것은 탈춤 자체의 발전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에의 영향을 위해서도 간절히 요구되는 일이다. 이에 이 글에서는 우리 탈춤에 쓰이는 춤을 그 기능에 따라 나누어 보았다. 새로운 탈춤과 연극, 그리고 다양한 창작 춤 활동에 작은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1) 춤의 기능에 따른 분류

우리 탈춤이 분명히 종합예술임에도 불구하고, 이제껏 탈춤에 관한 논의는 주로 연극적 방면에 치우쳐 왔다. 탈춤의 발생에 관한 논의 역시 연극사적 측면 - '산대희 기원설', '기악 기원설', '농경의식 유래설', '풍농굿 기원설' 등 -에서 크게 다뤄져 왔고, 무용학적 측면에선 상당히 소외되어 있었다. 다시 말해서 민속탈춤에 쓰여진 각 춤사위의 기원에 관한 연구를 통해서도 탈놀이 자체의 발생을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그러한 부문의 연구는 등안시되었다고 볼 수 있다.

어쨌든 탈춤이 탈을 쓰고 춤추며 벌이는 극놀이임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탈춤에는 굿, 극, 춤, 악 등이 신명 속에 함께 어우러져 있기 때문에, 춤에 관한 깊이 있는 연구는 필수적이다. 이러한 점에서 지금 남아 있는 민속탈춤을 대상으로 그 속에 쓰여진 춤을 기능에 따라 나누어 본다는 것은 뜻 깊은 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1) 제의적 기능으로서의 탈춤

연극사적 측면에서 탈춤이 '굿에서 극으로 발전하여 왔다'는 조동일의 주장에 굳이 주목하지 않더라도, 탈판에 참여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탈춤 속에 굿의 요소가 곳곳에 있음을 알수 있다.

탈춤 속에 나타나는 제의적 기능으로서의 춤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대체로 극의 앞부분에 보이는 벽사무(귀신을 쫓는 춤)이고, 다른 하나는 주로 극의 끝부분에 위치하는 굿이다. 앞말의 경우는 양주별산대놀이 제1마당 상좌춤에서 볼 수 있다. '합장재배'의 춤은 구경꾼 모두가 아무런 탈이 없기를 바라는 의식무로서 바로 판붙임의 춤이라 할 수 있고, '사방치기'는 사방의 여러 신에게 알리는 춤이다. '사방치기'와 같은 성격의 춤은 가산오광대의 '오방신장무'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놀이의 시작과 더불어 굿거리 장단에 맞추어 황제, 청제, 흑제, 백제, 적제,장군이 나와 각 방위(동쪽, 서쪽, 남쪽, 북쪽, 가운데)에 서서 벽사무를 춘다. 흔히 본격적인 놀이가 벌어지기 전에 미리 사악한 것을 놀이판에서 없애고자 벽사의식춤을 추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뒷말의 경우로는 동래들놀음의 할미마당에서 할미의 죽음에 대한 한바탕의 굿, 양주별산대놀이의 신할애비와 미얄할미마당에서 미얄할미의 죽음에 대해 신할애비, 도끼와 도끼 누이 삼부녀가 하는 넋걸이, 가산오광대에서 할미영감마당에서 죽은 영감의 넋을 달래는 무당의 오구굿 따위가 그 좋은 보기라 할 수 있다. 주로 죽은 이의 넋을 빌거나 바라는 바를 이루기 위해 벌이는 굿은 간절한 사설과 함께 춤의 절정(무당춤)을 보여 주고 있다.

(2) 독자적인 마당춤으로서의 춤

우리 탈춤 속에는 곳곳에 춤으로만 엮여진 부분이 있다. 그것은 한 마당 모두를 이루기도 하고 마당의 일부를 이루기도 한다. 생활의 어려움과 슬픔을 공동체적 웃음으로 뒤바꾸면서 공동의 적을 물리친 승리를 예술적인 '두레의 춤'으로 표현함으로써 신명의 극치를 이루는 마당춤은 그 좋은 보기가 되고 있다.

수영들놀음의 사자무과장에서 범과 사자가 벌이는 격투난무는 웅장한 춤으로서, 사자라는 대리자를 통해 범이라는 무서운 존재를 물리치고 있다. 또한, 동래들놀음의 문둥이 마당과 고성오광대의 문둥북춤 마당, 그리고 통영오광대의 문둥춤에서는 문둥이가 나와 한바탕 신명의 춤을 추고 있다. 봉산탈춤의 팔목중춤 과장에서도 팔목중이 한데 어우러져 다 함께 각자 자신의 장기춤을 흥겹게 춘다.

문둥이라는 신체불구자가 춤을 출 수 없는 자신의 불구를 딛고, 스님이 승려라는 종교적 제약을 벗고 자유와 환희의 춤을 엮어 내고 있다. 바로 열린 마당에서 몸짓을 통해서만 나타낼 수 있는 마당춤의 멋이라 할 수 있다.

(3) 연극적 기능으로서의 춤

우리 탈춤에 나타난 연극적 기능으로서의 춤은 인물 성격 표출, 행위 표현, 시간과 공간의 이동 등의 기능을보여 주고 있다.

첫째로, 인물 성격 표추르이 춤은 수영들놀음 양반마당에서 볼 수 있다. 다섯 광대(수양반, 차양반, 셋째 양반, 넷째 양반, 종갓집 도령)는 제각기 여러 가지의 추을 추지만, 모두 '덧뵈기춤'이라 일컷고 배역에 따라 춤의 양상이 조금식 다름을 볼 수 있다. 수양반은 점잖은 풍조가 있어 양반춤일 할 수 있겠고, 차양반은 움직임이 느린 노인춤이고, 셋째와 넷째 양반은 젊은이다운 씩씩한 춤으로 청년춤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종갓집 도령은 애들이 까부는 춤으로 동자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통영오광대 둘째마당 풍자탈에는 홍백탈과 흑탈에 이어 삐뚜루미탈이 나와 앞치락뒤치락 병신춤을 추며 자신의 몸이 반신불구임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나오는 이의 성격은 의상이나 대사에도 나타나지만, 춤이나 몸짓을 통해서도 뚜렷하게 전달되고 있다.

둘째로, 탈춤 속에서는 배역의 연극적 행위나 동작도 춤으로 나타나고 있다. 통영오광대 넷째 마당 농창탈에는 상좌중이 나왓 제자각시를 농락하는 춤을 추고, 제자각시는 이에 호응하며 농을 받는 춤을 춘다. 양주별산대놀이의 노장춤 마당에서는 소무가 남성을 유혹하는 자라춤을 춘다. 또한 봉산탈춤과 송파산대놀이에서는 원숭이와 소무 사이의 간통을 춤으로 알맞게 나타내고 있다.

대사가 필요 없는 사이, 대사가 통하지 않는 사이에는 어쩔 수 없이 행위나 몸짓이 춤으로 나타나고, 때로는 그것이 더 큰 생동감을 불러 일으키기도 한다.

셋째로, 탈춤에는 나오는 이의 등장, 퇴장이나 시간과 공간의 움직임을 역시 춤으로 풀어 내고 있다. 양주별산대놀이 노장춤 마당에는 원숭이가 말뚝이의 부추김에 의해 소무를 유혹하러 왔다갔다하면서 '깡충걸음춤'을 추고, 샌님춤 마다에는 소무가 샌님을 거부하고 간부 포도부장을 손짓하며 부르면 신이난 포도부자은 소매를 걷고 '깨끼춤'을 빠르게 추며 소무에게로 다가온다. 위의 겨우는 같은 장소 안에서의 이동을 보여 주고 있지만, 팔도를 다니는 것과 같은 먼 움직임이나 오랜 시간의 흐름을 간단한 춤으로 나타내고 있다. 이것은 탈춤이 무대장치 없이 극이 진해외는 가운데, 장소의 바꿈이나 시간의 흐르을 손쉽게 나타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탈춤 속의 춤이 꼭 한 가지 기능만을 나타내고 있지는 않다. 보기를 들자면 가산오광대의 문둥이춤의 경우, 독자적인 마당추의 기능뿐만 아니라 인물의 성격을 나타내는 연극적 기능도 함께 담고 있으며, 할미영감마당에서 할미의 엉덩이추은 시간과 공간 이동의 기능과 인물의 성격을 나타내는 기능을 함께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춤을 통해서 보더라도 우리 탈춤 속에는 제의적인 춤, 독자적인 마당춤, 연극적 기능으로서의 춤이 두루 섞여 있다.

따라서 우리 탈춤을 억지로 기존의 서구적 예술 갈래로 나누려는 시도는 바람직하지 않음을 알수 있다. 이제 우리는 굿(종합예술)으로서의 탈춤을 그 자체의 한 예술분야로 인정해야 하며, 그것이 탈춤 속에 나타난 춤의 다양한 기능에 힘입어, 앞으로 펼쳐 나갈 우리 춤의 발전에 커다란 밑거름이 될 것을 확인해 나가야 할 것이다.

6. 탈춤 속의 노래

1) 갈래

탈춤에서 쓰이는 노래의 갈래는 민요, 가사, 단가, 무가계 노래, 판소리계 노래, 창작 노래 등 여러 가지이다. 탈춤에서 보이는 창작 노래를 뺀 나머지 노래는 이미 있던 갈래의 노래들이다.

창작 노래는 춤꾸니 스스로 만든 노래이고, 기존의 노래를 탈춤에 맞게 새롭게 받아들인 것이다. 삽입 노래는 춤꾼의 기호나 능력, 공연의 흐름에 따라 내용이나 부르는 방식이 달라진다.

(1) 삽입노래

삽입 노래는 탈춤에 들어오면서 바뀌어진다. 물론 탈춤 속에 자리잡은 뒤에도 매 공연마다 얼마간의 바뀜은 계속해서 일어난다.

* 축소 삽입 노래 - 기존의 노래가 축소되어 받아들여진 노래이다. 축소되는 까닭은 기존 노래가 본디 가지고 있던 가창 목적과 쓰임새가 탈춤에서는 줄어들거나 바뀌기 때문이다.

(보기)물레 노래 (고성오광대, 가산오광대)

* 연합 삽입 노래 - 기존 노래의 어떤 부분과 다른 기존 노래의 한 부분이 결합되거나, 새로운 후렴이 들어간 노래이다.

(보기)백구타령 (수영들놀음)

* 가사 바꿈 삽입 노래 - 하나의 기존 노래가 탈춤의 내용에 맞게 가사가 바뀐 노래이다.

(보기) 색주가 집 (동래들놀음) - 춘향가 가운데 기생 점고 부분

* 완전 삽입 노래 - 하나의 기존 노래가 완전한 형태로 들어간 것으로, 때에 따라 전혀 다른 노래로 바뀌기도 한다.

(보기) 밀양아리랑 (통영오광대)

(2) 창작 노래

창작 노래는 대사를 노래의 형식으로 만든 것으로 그 내용이 극의 진행과 관련이 된다. 대사를 노래로 하는 까닭은 대사의 단조로움을 벗어나거나, 대사의 뜻을 강화시키기 위해서이다.

2) 쓰임

탈춤에 나오는 노래는 극적인 쓰임과 놀이적인 쓰임을 갖는다. 그러나 쓰임은 상대적인 구분일 뿐이지 하나의 노래가 한 가지의 쓰임만 가지는 것은 아니다.

(1) 노래의 극적인 쓰임

* 인물의 성격을 형상화하는 쓰임

탈춤에 나오는 인물에는 두 가지 모습이 있다. 숨은 성격과 드러난 성격이 맞는 모양과 맞지않는 모양이다. 인물 자신의 마음을 나타내는 노래는 숨은 성격과 드러난 성격이 맞는 것으로 그 인물의 성격이 노래에 형상화되어 나타난다. 양반들이 부르는 대부분의 노래는 양반의 신분으로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노래들이다. 이러한 노래는 양반의 또 다른 면을 드러냄으로써 양반을 희극적인 성격의 인물이 되게 한다.

* 인물의 행위를 돕는 쓰임

이런 기능을 가진 노래는 인물의 행위와 노래의 내용이 어울린다. 고성오광대의 물레노래는 할매가 직접 물레를 돌리면서 부르는 노래이다. 이처럼 행위를 돕는 노래는 그 노래가 갖고 있더 원래의 쓰임을 탈춤 속에서 살리면서 받아들인 것이다.

* 장면을 형상화하는 쓰임

동래들놀음의 사벽도 사설은 말뚝이가 양반의 집으로 양반을 찾으러 갔다가 방안의 벽을 보고 묘사한 노래이다. 어떤 장면을 형상화하는 노래는 주로 나열식의 노래이다. 사실적인 장면을 나열하는 것만은 아닌다.

(2) 노래의 놀이적인 쓰임

수영들놀음의 양반마당에 나오는 오돌또기 타령, 백구타령 따위는 인물의 성격을 형상화시키는 기능도 하지만, 탈춤의 놀이성을 펼치는 쓰임도 있다. 이런 노래는 놀이성을 넓히는 것이기 때문에 모두 춤과 연결되거나 춤을 추면서 부른다. 놀이적인 쓰임이 있는 노래는 대부분 춤꾼과 구경꾼이 이미 잘 알고 있는 노래들이다. 그러므로 구경꾼은 쉽게 이런 노래들을 따라 부를 수 있으며, 또 이로 인해 공연장의 분위기는 신명의 판으로 쉽게 끌러 올려진다.

7. 불림이 방법과 쓰임

1) 불림의 방법

탈춤의 중요한 구성요소가 대사, 춤, 노래라면 노래와 춤에는 반드시 장단이 따른다. 춤과 노래에 모두 장단이 필요하지만, 춤꾼 장단 신호가 있는가 없는가에 따라서 춤과 노래는 나뉜다. 즉 노래는 춤군의 장단 신호가 없이 악사가 스스로 장단을 치지만, 춤은 춤꾼의 장단 신호를 필요로 한다.

탈춤의 모든 춤에 장단 신호가 필요한 것은 아니나, 대부분의 춤에는 장단 신호가 있다. 춤을 추기 위해서 악사에게 장단을 요구하는 신호를 '불림'이라고 한다. 불림은 춤꾼이 쓰는 말로 된 신호이다.

해서탈춤과 산대놀이의 불림은 잡가나 십이가사류의 1∼2구로 된 것이 대부분이다.

(보기) 녹음방추 승화시 (강령탈춤)

낙양동천 이화정 (봉산탈춤)

화간 접무는 분분설 (은율탈춤)

양양소야 제박수하니 난가쟁창 백동제라 (양주별산대놀이)

나비야 나비야 청산가자 호랑나비야 너도가자 (송파산대놀이)

위와 같은 불림들은 춤꾼이 공연의 흐름에 따라 자기 마음대로 골라 쓸 수가 있다. 들놀음이나 오광대에서는 잡가나 십이가사류의 1∼2구로 된 장단신호는 없다. 그러면 불림이 방법(종류)에는 무엇이 있는가를 살펴보자.

(1) 대사의 율동화 - 앞 대사의 어떤 부분이 되풀이된 것과, 대사 그 자체가 율동화된 것이 있다.

(보기) 노새라네 (강령탈춤의 말뚝이춤)

난데없는 도적놈이 (양주별산대놀이의 팔목중춤)

길주 명천 호령천 (동래들놀음의 양반)

청노새 청노새 (고성오광대)

이러한 불림은 극의 진행에 일정한 관련을 가진다.

(2) 입장단 - 입장단식 불림은 대사가 율동화되어 불림이 된 것과는 달리 극 진행에 직접적인 관 련은 없고, 장단을 부르는 신호적인 기능이 두드러진다.

(보기) 얼수 절수 얼수 절수 (송파산대놀이)

응박 깽깽 (수영들놀음)

덩 덩 덩더러궁 (봉산탈춤)

(3) 직접적 언어 신호 - 춤꾼이 악사에게 장단을 말로써 바로 해달라는 것이다 .

(보기) 자 쳐라 (양주별산의 취발이춤)

빽빽할 응 엷을 박 응박 (수영들놀음 수양반)

직접적인 말 신호는 율동화된 말이 아니다. 이것은 춤을 추기 위한 장단을 요구하는 기능밖에 없다.

2) 불림의 쓰임

(1) 장단 신호의 쓰임

이 기능은 불림의 가장 기초적인 기능이다. 불림은 다른 율동을 지니기 때문에 일반 대사와 구별이 된다. 대사가 율동화된 것이나 입장단을 춤의 장단과 일치하는 율동을 지닌다. 불림과 일반 대사의 율동에 의한 차이는 악사에게 춤을 추기 위한 장단을 치게 하는 때를 알린다.

(2) 춤꾼이 춤을 준비하는 쓰임

불림은 춤꾼들 사이의 신호로도 쓰인다. 여럿이 춤을 추기 위해서는 각 춤꾼들이 춤을 통일하기 위하여 춤의 시작을 함께 해야 하낟. 불림을 하면서 춤꾼들은 본격적인 춤을 위한 예비 몸짓을 취한다.

(3) 신명의 도출과 확산의 쓰임

춤꾼은 율동적인 불림으로 인하여 잠가고 있던 신명을 불러일으킨다. 이런 춤꾼의 개인적인 신명은 곧 구경꾼의 신명을 이끌어 내는 일도 함께 해나간다. 불림은 춤꾼의 개인적 신명을 이끌어 내는 장치인 동시에 구경꾼들의 집단적 신명을 일으키는 기능 죽, 신명을 넓혀 나가는 기능을 한다. 이런 뜻에서 불림은 개인 신명을 집단 신며으로 옮기는 살아 있는 말로 된 장치이다.

(4) 대사와 춤의 연결 쓰임

대사와 노래가 말로 나타내는 것이라면 춤은 몸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또 대사는 비율동적인데 비해 노래와 춤은 율동적인 표현이다. 말하자면 대사는 비율동적인 언어표현이고, 노래는 율동적 언어표현이며, 춤은 율동적 신체표현이다. 대사와 노래가 언어표현이라는 공통성을 가지는 데 반해, 가요와 춤은 율동적이라는 공통성을 지니고 있다. 불림은 언어표현이라는 면에서 대사와 통하며, 율동적이라는 면에서 춤과 통한다. 이러한 성격으로 불림은 대사와 춤을 이어 주는 고리의 구실을 한다.

대 사 불 림 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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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율동적 울동적 ― 율동적

언어표현 ― 언어표현 신체표현

불림으로 말미암아 대사와 춤의 자연스럽지 못한 연결이, 자연스러운 연결로 바뀐다고 볼 수도 있다.

(5) 춤 장단의 빠르기를 알려 주는 쓰임

춤꾼이 춤을 추고 싶은 장단의 빠르기를 악사에게 불림으로 알려 줌으로써, 춤꾼의 춤이 보다 즉흥적이고, 생동감이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같은 춤사위라 하더라도 춤사위와 장단의 빠르기에 따라 탈춤마당의 분위기가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 이 글은 [좋은 세상]에 실려 있는 자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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