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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의 의미와 탈춤의 기능
2003.12.10 | 조회수 : 3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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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의 뜻

우리말 '탈'은 광대, 초란이, 탈박, 탈바가지라고도 하고 한자의 표기로는 면(面), 면구(面具), 가변(假面), 대면(代面), 귀두(鬼頭), 가두(假頭), 가수(假首), 괴뢰(傀儡), 귀뢰(鬼儡) 등으로 뒤섞여 사용되었다.   그 밖에 인형 계통의 한자어도 곽독(廓禿), 토용(土俑), 처용(處容) 등 여럿 있어 같은 뜻으로 쓰였다. 가면은 원래 얼굴의 앞면을 가리는 면구이고, 가두는 머리 전체를 후두부까지 가리는 것으로 구분한다. 광대라는 말은 연희자라는 뜻 말고도 얼굴이나 낯 또는 거기에 물감을 칠하는 일을 뜻하기도 하였다. 이를 미루어보면 얼굴을 가리거나 머리에 쓰는 것만이 탈이 아니라 가장의 필요에 따라 온몸을 가리기도 하고 따로 가장물을 만들어 놀리는 것을 모두 탈에 포함시켰다고 하겠다. 탈은 '가린다', '감춘다'라는 은폐성의 뜻을 지니고 있는데 어감상 언뜻 그리 좋은 인상을 주는 말은 아니다.
한자로 가면은 가짜 얼굴을 뜻하며 '탈을 썼다', '가면을 썼다'하면 겉과 속이 다른 이중성을 일컫는 말이 되기도 한다. 양두 구육(羊頭狗肉)이란 말처럼 본심을 감추고 겉으로는 그렇지 않은 것처럼 꾸민 거짓스럽고 의뭉한 작태를 가리키는 것이다. "사람의 탈을 쓰고 그런 짓을 하다니"라고 할 때의 탈은 거죽, 꺼풀, 낯짝 또는 꼬락서니, 행색이란 뜻이다. 곧 못마땅하게 여겨 낮추어 보는 모멸감을 풍긴다. 또 '아는 게 탈'이라거나 '배탈이 났다'라고 할 때는 사고가 났거나 장애에 부딪혀 무언가 잘못되어 있는 상태를 말한다. 산림지대에 살던 사람의 인사말 가운데 "밤새 탈이나 없었느냐"고도 하는데 이때 탈은 호환(虎患)을 뜻하던 말이었다. 또 "멀쩡한 생사람을 탈잡는다"고 하면 공연히 까탈스럽게 굴고 꼬투리를 잡아 트집을 부리거나 어떻게 하든지 허물을 꼬집어 내어 탓하고 헐뜯는 성깔이 있음을 이른다.
이렇게 보면 탈이란 말은 눈가림, 꾸며댐, 거짓, 의뭉스러움, 거죽, 꺼풀, 낯짝, 꼬락서니, 행색, 변고, 장애, 고장, 환란, 액, 까탈스러움, 트집, 꼬투리, 헐뜯음, 허물, 핑계, 탓, 성깔 등과 같은 말과 연관되어 있는 듯하여 대체로 보아 그리 좋은 어감은 아니다.
서양말로 '마스크'라 하면 얼핏 가장 무도회의 동물 형상이 떠오르고 야구나 펜싱에서 방어용으로 얼굴에 쓰는 마스크라든지 화생방의 방독면, 용접 마스크, 데드 마스크 등이 연상된다. 또 "그 마스크에 그 몸매"라는 말과 함께 공상 과학 영화에서 본 외래인의 흉측한 얼굴 형상도 떠오른다. 이에 미루어 가장, 변장, 복면, 자기 방어, 보호, 엄폐, 은폐, 용모 대행 등의 뜻이 담겨 있는 것 같아 우리말의 탈보다는 어감이 썩 나쁘지는 않다.
탈, 가면, 마스크라는 말들이 지닌 뜻이나 느낌 등을 한군데 모아 이를 탈춤과 결부시켜 본다면, 탈춤은 좋지 않은 세상살이를 두고 까탈부리며 거짓꾸며 춤추고 놀고 있는 것이라고나 할까. 탈춤은 탈을 쓰고 탈난 것을 탈잡아 노는 춤놀이다. 탈을 쓴다는 것은 놀이에서 가면을 복면처럼 얼굴에 쓴다는 말이겠고, 탈난 것이란 살아가면서 맞닥뜨리는 온갖 궂은 일이나 변고, 액, 재앙을 일컫는 것이겠다. 탈잡는다는 것은 허물을 트집잡아 까다롭게 군다는 뜻이지만 안 좋은 것, 잘못된 것, 부정적인 것을 밝혀 꼬집어 내어 비평한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 맺힌 응어리를 순조롭게 풀어 안 된 일을 되게 한다는 적극적인 의미도 있는 것이다. '탈바꿈'이란 말도 단순한 의미의 전신(轉身)이 아니다.

탈의 주술성

탈춤은 한마디로 벽사 진경( 邪進慶)의 액땜 또는 살풀이라 할 수 있다. 그런 만큼 탈춤은 자연의 재해를 물리쳐 삶의 안녕과 풍요로움을 맞이하는 유감 주술적인 굿이기도 하고 인간 사회의 비정상을 공격하여 정상을 되찾는 현실 비판적인 연극이기도 하다. 또한 주술적인 것과 현실적인 것, 예축성(豫祝性)과 비판성이 서로 맞물려 있다.
흔히 탈춤은 인간과 자연, 인간과 신의 문제를 주술적으로 해결하려는 굿에서 인간과 인간, 인간과 사회의 문제를 예술적으로 표현하려는 극으로 발전해 왔다고 한다. 굿에서 극으로, 주술성에서 예술성으로 전환되어 온 과정은 어느 곳, 어느 민족의 연극에나 두루 통하고 있다. 우리의 탈춤도 예외가 아니다. 물론 굿이 자연이나 신 사이 갈등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인간 사이의 사회적 갈등도 다루는 것이며 마찬가지로 극 또한 자연이나 신 사이 갈등도 아울러 다루지만 다만 우리에게 있어서는 동양의 전통극 일반이 그렇듯이 일과 놀이를 신에게 바치는 공의(公儀)라는 종교 의례성이 연극 예술로 발전된 이후까지도 끈질기게 남아 곳곳에 보인다는 점이다. 그만큼 주술성이 뿌리깊다고나 할까.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사고 방식이 탈춤의 주술적인 내용을 사회비판적인 내용으로 바꾸었다 하더라도 제의적인 요소를 완전히 제거하지는 못하였다. 오늘날 전해오는 탈춤을 보면 판열음의 고사, 지신밟기식의 길놀이, 벽사의 의식춤, 오방신장무(五方神將舞), 뒤풀이, 탈의 소각 등에서 굿놀이의 형태적 잔재를 찾아볼 수 있다. 또한 탈춤이 세시 풍속의 일환으로서 명절날 마을 단위의 축전이었던 점도 그러한 의미 배경 속에 있다.
이러한 제의적인 습성은 탈의 경우 한결 두드러진다. 굿에서 극으로 옮겨옴에 따라 탈의 형상도 원래 귀신 형용에서 점차 인간의 모습으로 바뀌어져 왔음은 여러 가지 사례에서 검증되지만 예부터 후대에 이르기까지 탈은 외경심을 불러일으켰고 탈의 힘에 거역하면 탈이 난다고 해왔다.
원시시대의 수렵 가면, 전쟁 가면, 기도 가면 등의 주술성은 말할 나위도 없지만 제천 의식이나 신화 체계의 행위 전승에 사용된 탈도 제의적인 것이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 된 탈인 호우총(壺杆塚)의 목심칠면(木心漆面)이나 신라의 황창무(黃昌舞), 상염무(霜髥舞)의 탈도 주술적인 성격이 강하고 호국신인 용신(龍神)을 제사지낼 때 사용된 처용탈의 유래담이나 통일신라 이후 일반 민가에서 처용 화상을 걸어 역신을 막았다는 사실도 처용탈이 유감 주술적인 것의 내림이었음을 반증한다.
고려와 조선시대의 눈알이 번뜩이는 방상씨(方相氏) 가면이나 궁중 나례(宮中儺禮)의 탈도 역시 제액(除厄)의 것이고, 연산조의 풍두무(豊頭舞)라는 탈춤의 탈도 그 이름으로 보아 귀신 형용의 탈이었음직하다. 이는 머리를 풀어헤친 봉두 난발의 귀면형으로 봉산 목중탈의 형상과 비슷했으리라 유추해 본다. 개성 덕물산의 탈이나 제주도 입춘굿의 탈도 굿놀이의 탈일 수밖에 없다. 동해안별신굿이나 들놀음, 오광대에 나오는 영노, 비비, 주지, 사자, 범, 담비탈들도 영험하고 신령스런 가상 동물의 형상이다.
하회에서는 몇 년에 한 변 별신굿을 할 때에 엄숙한 제의를 올리고서야 탈을 뵈올 수 있었다고 하고 탈 제작자인 허도령의 전설은 탈과 관련된 금기(禁忌) 사항이 얼마나 엄격했는지를 짐작케 한다. 하회뿐만 아니라 북청에서도 탈을 함부로 다루다가 목숨을 잃은 경우도 있었으며 탈의 영험력으로 불치병을 고쳤다는 이야기도 전해 온다. 제의적인 민속 사회가 아니더라도 탈을 쓰면 그때만은 신격의 존재가 되어 탈쓴 노비가 못된 양반을 징치하여도 아무런 뒤탈이 없었다고 한다.
근래 봉산에서는 놀이를 마친 뒤 탈을 소각했다고 하고, 양주에서는 일반 민가에서 보관을 꺼려해 마을의 외딴 곳에 따로 두었다고 한다. 또 탈을 쓰고 논 사람은 제사에 참가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이런 자료는 탈놀이 자체를 비천하게 보는 사회적 관습을 말해 주기도 하지만 벽사의 의미와 함께 탈을 금기의 것으로 본 내림이 얼마나 뿌리깊은가를 잘 말해 주는 것이다.
궁중 나례나 일반민의 장례 절차에서 탈을 쓰고 놀기도 했다는 것은 탈에 얽힌 주술적 효능을 활용한 예일 터이다. 또 최근까지 통영에서는 기우제 때 탈을 쓰고 놀면 비가 왔다고 한다. 거기서는 요즘도 탈을 '탈님'이라 부르며 받들어 모시고 있다.
탈에 대한 민간 의식이 이처럼 벽사, 금기, 신비, 의경, 영험 등과 결부되어 있지만 탈이 마냥 낯설고 두려운 존재만은 아니다. 불상이나 염주, 성화처럼 소중히 모셔 몸 가까이에 두고 하염없는 눈길과 손때로 정을 쏟아 제몸 살붙이처럼 애지중지 정성을 다하는 치성의 대상이기도 한 것이다.
생활의 손때나 마음의 손때가 묻은 것에는 귀신이 많이 붙는다는 속신(俗神) 관념이 있어 이런 물건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 일이 민속에선 흔하다. 일상 생활 용구도 그러하다. 이빠진 단지, 부러진 부지깽이, 몽당 빗자루, 닳아빠진 고리짝같이 아무 쓸모가 없게 되었는데도 좀체로 내다 버리지 않는 것은 단순한 늙은이의 마음이 아니다. 일상 생활 용구는 실용성과 함께 그에 따른 신앙 의례적인 것이고 거기에 부합된 아름다움이 존재한다. 대부분의 민화도 잡귀를 쫓는 실제적인 기능을 지닌 것이어서 부적처럼 사용된 그림이었지 정서적 관상만의 대상은 아니었다. 노리개나 패물 따위도 축재의 의미가 있으나 신이 깃드는 신체(神體)로서의 의미도 있다. 소중한 것일수록 신을 모시고 신에게 바치는 헌납의 몸붙이인 것이다. 그러므로 탈춤에서 노장은 자신의 온 생애의 상징인 염주를 벗어 소무에게 건네 주고 그의 환심을 샀다. 탈도 이런 몸붙이와 같은 것이다.
탈을 한참 보노라면 어딘지 주변에서 흔히 본 듯한 얼굴이 연상되고 때로는 제모습인 듯이 보인다. 탈처럼 생긴 얼굴도 주위에서 흔히 보게 된다. 이런 얼굴은 대개 잘생기지 않아 오히려 친근감을 준다. 어쩌면 이런 탈의 얼굴이 우리와 한편이 되어 공동의 적을 물리쳐 보살펴 주는 듯한 위력적인 인상으로 비치기도 한다. 두렵기도 하고 신뢰감도 간다. 이런 탈 앞에서는 모든 것을 풀어헤쳐 내게되는 듯한 해방감을 맛보게 된다. 탈을 보면 동심이 아니더라도 한번 써 보고 싶고 남들에게 보이면서 어울리고 싶고, 푸근하면서도 신명이 절로 나는 이유가 대개 이러하다. 들놀음의 앞놀이인 길놀이에서는 놀이판에 참가한 사람마다 스스로 만든 탈을 쓰고 신바람이 난 가장 행렬에 한몫을 한다.

탈의 연행성

탈은 걸어 놓고 완상하는 장식적인 고정체가 아니다. 쓰고 움직이는 것이기에 움직이는 조각(물론 오늘날의 mobile과는 다르지만)과 같이 생동하는 공간적 가변성을 지닌다.  탈춤에서 탈은 춤이나 노래나 발림과 함께 단순히 배역 인물의 성격을 규정짓는 차원을 넘어 시시때때로 극적 상황을 연출하면서 표정의 변화를 일으킨다.  하회탈을 보면 심한 요철 굴곡과 비대칭적인 형상으로 얼굴을 숙이면 침울하고 들면 호방하여 다양한 표정으로 생동감을 창출한다. 탈은 맨 얼굴의 표정만큼 자유롭지는 못하나 고착된 조형 공간의 것은 아니다. 연행으로서 생동하는 조형 공간인 것이다.  혼례식에 동원된 병풍이나 나무 기러기는 그 자체만으로 완결된 조형적 의미를 지니지는 않는다. 혼례 현장의 진행 과정과 깊은 관계를 맺으며 혼례의 행위들과 더불어 조형적인 의미를 새롭게 만드는 것이다.
병풍은 단순한 무대 장치가 아니라 연희 상황과 직접 관계를 맺음으로써 사람과 더불어 행동하는 그림이 되고 병풍 속의 동식물 그림은 본질적으로 민담 속의 동식물과 마찬가지로 사람들과 얘기를 주고받는 구연자(口演者)가 된다. 병풍은 그림의 이미지만으로 의미가 다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병풍이 속해 있는 연행 사건의 한 과정이 되어 상황과 더불어 새로이 그 모습을 만들어 가는 연행 주체인 것이다. 주변과 유기적 관계를 맺으면서 행동하는 매체로 사용되도록 자신을 상황의 구조적 관계 속에 던져 넣는다. 이렇게 더불어 판을 짜는 것이다.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병풍이 그러할진대 연회자의 몸에 붙어 움직이는 탈인 경우에랴.
열린 공간의 세계에 행위로 참여하는 탈은 판을 출렁이게 하여 난장을 트게 해주는 활력소일 뿐 아니라 의사 소통을 매개해 주는 살아 있는 신호 전달 체계이기도 하다. 이렇게 판을 열어 숨어 있는 놀이 심성을 분출시켜 주는 탈은 숨어 있는 신명을 돋구어 낸다. 이는 은폐성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탈을 쓰면 제 얼굴을 가리는 것이 되어 우선 기분이 안온해지고 군중 앞에 몸을 드러내어 안면을 트는 일이 어렵잖게 된다. 늠름해지고 담대해지기까지 한다. 탈춤의 이름난 연희자 가운데에는 탈을 쓰지 않으면 싱겁다고 하여 신명이 덜 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또 탈을 쓰면 '역할 바꾸기'가 되어 탈의 역을 자연스럽게 대행하게된다.
탈춤에서는 대상과 자신이 무분별하게 일치되는 감정 이입(感情移入)아니라 비판적 거리로서 소격화(疎隔化)가 일어난다. 배역을 맡은 사람이 전적으로 배역의 인물이 되어 무대에 서는 '내면적 리얼리즘'의 연기가 불필요하게 되는 것도 거기에서 비롯된다. 그는 그가 쓴 탈의 배역으로 나오는 동시에 자신으로서도 나온다. 탈꾼들이 이른바 감정을 제대로 잡지 못하고 수시로 놓치고 자신을 드러내는 연유가 그러하다. 그는 자기가 맡은 배역까지도 스스로 객관화하여 공격하고 웃어도 되는 것이다. 이것은 연희자가 극적 인물로 전환되는 과정이 이미 극 속에 포함되어 있는 것과 연관된다.

탈의 조형성

탈은 그 자체가 스스로의 삶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탈의 형상을 두고 골상학적 분석을 한다면 그 탈의 삶의 편력을 알아 낼 수가 있을 것이다. 마치 경륜이 높거나 인상을 잘 보는 사람이 얼굴을 보고 인생 내력을 풀어 낼 수 있듯이.
탈의 형상은 유형적인 표현을 하고 있다. 이런 유형성은 동질경험의 집단 속 여러 사람에 의해 겹겹이 그 이미지가 중첩되어 나온 것이다. 그러므로 비록 개별적인 시지각(視知覺)에서 형상화된 것일지라도 그것은 이미 공동적 시지각의 전지적(全知的) 시선 속에 흡수된 것일 뿐이다. 개개 탈의 개성적 형상은 유형화된 속에서 집단의 주관화 또는 객관의 주관화일 뿐이다.
탈의 유형적 조형성은 개별 인물의 성격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성격도 반영하고 있다. 특히 뒤의 것은 사회적 공동 인식 내용의 인격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유형성은 탈춤의 유형적 내용이나 등장 인물의 유형적 성격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탈춤은 사회계층 사이의 갈등이 몇 가지 주제로 유형화된 것임이 잘 알려져 있다. 등장 인물의 극적 성격도 파계승, 양반층, 하인, 노부부, 떠돌이 장사꾼, 몸파는 여자, 유랑 걸인, 병신 등으로 유형화되어 있다. 등장 인물의 유형적 성격(stock character)이 지속되면서 연희자의 이름이 봉산의 '안초목'처럼 단골 배역의 이름으로 바뀌거나 목중이란 배역의 이름이 양주의 '완보(完甫)'처럼 연희자의 이름으로 바뀌기도 한다. 실제 말뚝이란 이름의 하인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탈의 유형적 조형성은 해마다 되풀이되는 연행의 주기적 반복성에 연유되어 있기도 하지만 유형적인 말재담의 틀과도 연관되어있다. 가령 미얄의 경우 "난간이마에 주게턱, 웅캐눈에 개발코, 쌍통은 다 깨진 바가지같고 머리칼은 다 모즈러진 빗자루같고……" 등의 재담이 미얄탈의 형상을 유형화시킨다. 이런 말재담은 탈의 형체가 없더라도 미얄탈의 형상을 전승시키는 기능을 지닌다. 탈은 연행이 끝나면 소각되기 마련이므로 새로운 탈은 머리에 기억되어있는 탈의 형상에 따라 제작된다. 따라서 변형은 불가피하지만 탈의 원초 형상은 경험 동질 집단 속에서 저장된 실체로서 전승된다. 전승 과정의 이러한 저장된 유형성에서 즉흥성과 창의성이 나온다. 연행 일반이 그러하듯 탈이나 탈춤의 전승 원리는 유형성 속의 즉흥성 또는 창의성이다. 그러나 오늘날 탈이 원형을 얼마나 훼손시키고 있는가 하는 문제는 접어두고라도 즉흥성 또는 창의성이 폐쇄적으로 도식화되거나 다양성이 일률화되어 퇴행하고 있음은 늘 지적되고 있는 문제이다.
동래, 수영, 통영의 말뚝이탈이라든가 봉산탈춤의 노장, 취발이탈은 어깨를 덮을 정도로 크기가 커서 탈쓴 몸이 왜소해 보일 정도이다. 이는 그러한 배역 자체에 신체적 정황(physical feeling)을 부여함으로써 인물 성격의 강렬한 인상을 특성화시키는 효과적인 표현법이 있다. 그러나 현행의 탈은 기술의 미흡함도 미흡함이지만 인물성격의 부각보다는 탈 자체의 완상적 취미만을 부추기는 면이 없지 않다.
무엇보다 우리 탈에서 빼놓을 수 없는 특성은 희화성(戱畵性)이다. 우리의 탈이 중국이나 일본의 것에 비해 깊은 고뇌나 철저함이 없어 유현성, 신비성, 상징성이 덜하다고 아쉬워하나 그런 탈과는 다른 독특한 표현성이 엿보이고 있다.
오늘날 전해 오고 있는 탈은 사실적인 인물탈이 주류를 이루고있으나 대개는 유형적 시선 속에서 변형, 과장, 축소, 왜곡이 심해 강렬한 표현성을 띠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표현성은 '어른 같은 아해', '구수한 큰 맛'처럼 투박하고 소담스럽다. 또한 우리의 탈은 일탈(逸脫)이나 파격을 이루되 그것이 흘러서 넘치지는 않는다. 비대칭적이고 불균형이되 전체적으로 조화 속에 품기어 있다.
얼굴 모양을 보면 원형, 원추형, 역삼각형, 달걀형, 말상 등으로 다양하다. 눈의 모양도 각양 각색이다. 퉁방울 눈, 움푹 들어간 눈, 실눈, 위로 째진 눈, 아래로 처진 눈, 사팔뜨기에 짝짝이 눈 등도 흔하다. 입이나 코의 모양새도 주물러 놓은 듯 선택적 왜곡이 심하다. 게다가 불거진 광대뼈며 주름살, 파리똥, 옴, 혹, 여드름, 점박이, 언청이, 주걱턱에 부러진 이빨 등을 하고 있다.
특히 양반탈이 의도적 왜곡이 심하다. 후대의 양반탈을 보면 전대의 하회탈이나 병산탈에서 보이던 양반의 위엄, 권위, 덕성 등이 사라지고 허세와 비리와 거드름을 날카롭게 왜곡, 폄출(貶出), 찬탈 등으로 풍자하고 있다. 그러나 '너 죽고 나 죽자'하는 식의 단선적인 공격이 아니라 정면에서 에돌아서 뒤통수를 친다. 그들은 대체로 초라한 행색이어서 맞붙어 싸워 볼 만하게 만만해 보인다. 고의로 비틀어 놓아 장난기가 있는 것이다. 이는 깊은 사회적 통찰 끝에 획득한 민중적 여유요 푸근함이다.
희화되기는 이른바 민중의 탈도 마찬가지다. 모양 좋게만 형상화되어 있지 않다. 할미광대를 보면 지지리 궁상에 추녀이다. 그러나 자신에 대해 여간 늠름하지 않고서는 스스로를 추녀화할 수 없다. 자신의 문제를 거리를 두고 스스로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또 천연덕스런 그 몰골에는 약삭빠름도 없지 않아 스스로에 대한 공격적인 대결상도 엿보이고 있다. 변증법적 유화라고나 할까.
우리의 탈에서 비극적인 것이 없다는 것은 낙천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서글픈 것에 속한다. 그러나 겉웃음의 희화화 속에는 한, 고통, 눈물, 체념이 숨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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