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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길동전
2003.12.24 | 조회수 : 7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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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조 세종 때에 한 재상이 있었으니, 성은 홍씨요 이름은 아무였다. 대대 명문거족의 후예로서 어린 나이에 급제해 벼슬이 이조판서에까지 이르렀다. 물망이 조야에 으뜸인데다 충효까지 갖추어 그 이름을 온 나라에 떨쳤다. 일찍 두 아들을 두었는데, 하나는 이름이 인형으로서 본처 유씨가 낳은 아들이고, 다른 하나는 이름이 길동으로서 시비 춘섬이 낳은 아들이었다.
그 앞서, 공이 길동을 낳기 전에 한 꿈을 꾸었다. 갑자기 우레와 벽력이 진동하며 청룡이 수염을 거꾸로 하고 공을 향하여 달려들기에, 놀라 깨니 한바탕 꿈이었다. 마음 속으로 크게 기뻐하여 생각하기를, ‘내 이제 용꿈을 꾸었으니 반드시 귀한 자식을 낳으리라.’ 하고, 즉시 내당으로 들어가니, 부인 유씨가 일어나 맞이하였다. 공은 기꺼이 그 고운 손을 잡고 바로 관계하고자 하였으나, 부인은 정색을 하고 말했다.
“상공께서는 위신을 돌아보지도 않은 채 어리고 경박한 사람의 비루한 행위를 하고자 하시니, 첩은 따르지 않겠습니다.”
하며 말을 마치고는 손을 떨치고 나가 버렸다. 공은 몹시 무안하여 화를 참지 못하고 외당으로 나와 부인의 지혜롭지 못함을 한탄하였다.
그때 마침 시비 춘섬이 차를 올리기에, 그 고요한 분위기를 틈타 춘섬을 이끌고 곁방에 들어가 바로 관계하였다. 그 무렵 춘섬의 나이는 열여덟이었는데, 한번 몸을 허락한 후에는 문밖에 나가지 아니하고 타인과 접촉할 마음도 먹지 않기에, 공이 기특하게 여겨 애첩으로 삼았다.
과연 그 달부터 태기가 있더니 10달만에 일개 옥동자를 낳았는데, 생김새가 비범하여 실로 영웅호걸의 기상이었다. 공은 한편으로 기뻐하면서도 부인의 몸에서 태어나지 못한 것을 안타깝게 여겼다.
길동이 점점 자라 8살이 되자, 총명하기가 보통이 넘어 하나를 들으면 백 가지를 알 정도였다. 그래서 공은 더욱 귀여워하면서도 출생이 천해, 길동이

늘 아버지니 형이니 하고 부르면, 즉시 꾸짖어 그렇게 부르지 못하게 하였다. 길동이 10살이 넘도록 감히 부형을 부르지 못하고, 종들로부터 천대받는 것을 뼈에 사무치게 한탄하면서 마음 둘 바를 몰랐다.
“대장부가 세상에 나서 공맹을 본받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병법이라도 익혀 대장인을 허리춤에 비스듬히 차고 동정서벌하여 나라에 큰 공을 세우고 이름을 만대에 빛내는 것이 장부의 통쾌한 일이 아니겠는가. 나는 어찌하여 일신이 적막하고, 부형이 있는데도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니 심장이 터질지라, 이 어찌 통탄할 일이 아니겠는가!”
하고, 말을 마치며 뜰에 내려와 검술을 익히고 있었다.
그때 마침 공이 또한 달빛을 구경하다가, 길동이 서성거리는 것을 보고 즉시 불러 물었다.
“너는 무슨 흥이 있어서 밤이 깊도록 잠을 자지 않느냐?”
길동은 공경하는 자세로 대답했다.
“소인은 마침 달빛을 즐기는 중입니다. 그런데, 만물이 생겨날 때부터 오직 사람이 귀한 존재인 줄 아옵니다만, 소인에게는 귀함이 없사오니, 어찌 사람이라 하겠습니까?”
공은 그 말의 뜻을 짐작은 했지만, 일부러 책망하는 체하며,
“네 무슨 말이냐?” 했다. 길동이 절하고 말씀드리기를,
“소인이 평생 설워하는 바는, 소인이 대감 정기를 받아 당당한 남자로 태어났고, 도 낳아 길러 주신 부모님의 은혜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를 아버지라 못 하옵고, 형을 형이라 못 하오니, 어찌 사람이라 하겠습니까?”
하고, 눈물을 흘리며 적삼을 적셨다. 공이 듣고 나자 비록 불쌍하다는 생각은 들었으나, 그 마음을 위로하면 마음이 방자해질까 염려되어, 크게 꾸짖어 말했다.
“재상 집안에 천한 종의 몸에서 태어난 자식이

너뿐이 아닌데, 네가 어찌 이다지 방자하냐? 앞으로 다시 이런 말을 하면 내 눈앞에 서지도 못하게 하겠다.”
이렇게 꾸짖으니 길동은 감히 한 마디도 더 하지 못하고, 다만 당에 엎드려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공이 물러가라 하자, 그제서야 길동은 침소로 돌아와 슬퍼해 마지 않았다. 길동이 본래 재주가 뒤어나고 도량이 활달한지라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해 밤이면 잠을 이루지 못하곤 했다.
하루는 길동이 어미 침소에 가 울면서 아뢰었다.
“소자가 모친과 더불어 전생연분이 중하여, 금세에 모자가 되었으니, 그 은혜가 지극하옵니다. 그러나 소자의 팔자가 기박하여 천한 몸이 되었으니 품은 한이 깊사옵니다. 장부가 세상에 살면서 남의 천대를 받음이 불가한지라, 소자는 자연히 설움을 억제하지 못하여 모친 슬하를 떠나려 하오니, 엎드려 바라건대 모친께서는 소자를 염려하지 마시고 귀체를 잘 돌보십시오.”
그 어미가 듣고 나서 크게 놀라 말했다.
“재상가의 천생이 너뿐이 아닌데, 어찌 마음을 좁게 먹어 어미 간장을 태우느냐?”
길동이 대답했다.
“옛날, 장충의 아들 길산은 천생이지만 열세 살에 그 어미와 이별하고 운봉산에 들어가 도를 닦아 아름다운 이름을 후세에 전하였습니다. 소자도 그를 본받아 세상을 벗어나려 하오니, 모친은 안심하고 후일을 기다리십시오. 근간에 곡산댁의 눈치를 보니 상공의 사랑을 잃을까하여 우리 모자를 원수같이 알고 있습니다. 큰 화를 입을까 하오니 모친께서는 소자가 나감을 염려하지 마십시오.”
하니, 그 어머니 또한 슬퍼하더라.
원래 곡산댁은 곡산 지방의 기생으로 상공의 첩이 되었던 것인데, 이름은 초란이었다. 아주 교만하고 자기 마음에 맞지 않으면 공에게 고자질을 하기에, 집안에 폐단이 무수하였다. 자신은 아들이 없는데, 춘섬은 길동을 낳아 상

공으로부터 늘 귀여움을 받게 되자, 속으로 불쾌하여 길동을 없애 버릴 마음만 먹고 있었다.
하루는 초란이 흉계를 꾸미고 무녀를 청하여 말하기를,
“내가 편안하게 살려면 길동을 없애는 방법 밖에는 없다. 만일 나의 소원을 이루어 주면 그 은혜를 후하게 갚겠다.”
고 하니, 무녀가 듣고 기뻐서 대답했다.
“지금 흥인문밖에 일류 관상녀가 있는데, 사람의 상을 한번 보면 전후 길흉을 판단합니다. 그 사람을 청하여 소원을 자세하게 말하고, 공께 소개하여 그녀로 하여금 전후사를 자신이 본 듯이 이야기하게 하면, 공이 속아 넘어가 길동을 없애고자 할 것이니, 그때를 틈타 이리이리하면 어찌 묘한 방법이 아니겠습니까?”
이에 초란이 크게 기뻐서 먼저 은돈 오십 냥을 주고 관상녀를 청해 오도록 하자, 무녀가 하직하고 갔다.
이튿날 공이 내실에 들어와 부인과 더불어 길동이 비범함을 화제로 이야기하면서 다만 신분이 천함을 안타까워하고 있던 중, 문득 한 여자가 들어와 마루 아래서 인사를 하기에, 공이 이상하게 여겨 물었다.
“그내는 어떠한 여자인데 무슨 일로 왔소?”
그 여자가 말했다.
“소인은 관상 보는 사람이온데, 우연히 상공댁에 이르렀습니다.”
공이 이 말을 듣고 길동의 장래를 알고 싶어 즉시 길동을 불러서 보이니, 관상녀가 이윽히 보다가 놀라 말하기를,
“이 공자의 상을 보니 천고 영웅이요 일대 호걸이지만, 지체가 부족하니 다른 염려는 없을 듯합니다.”
하고는 말을 하고자 하다가 주저하기에, 공과 부인이 크게 의심이 나서 말했다.
“무슨 말인지 바른 대로 이르라.”
관상녀가 마지 못하는 체하며 주위 사람들을 내보내고 말했다.

“공자의 상을 보니, 가슴 속에 조화가 무궁하고 미간에 산천 정기가 영롱하오니 실로 왕이 될 기상입니다. 장성하면 장차 온 집안이 멸망하는 화를 당할 것이오니, 상공께서는 유념하십시오.”
공이 듣고 나서 놀란 나머지 한참 동안이나 묵묵히 있다가 마음을 진정시키고 이르기를,
“사람의 팔자는 피하기 어려운 것이니, 너는 이런 말을 누설하지 말라.”
당부하고는, 돈푼이나 주어 보내었다.
그 후로는 공이 길동을 산에 있는 정자에 머물게 하고 행동 하나하나를 엄격하게 감시했다. 길동은 이런 일을 당하자 설움이 더욱 북받쳤지만 어쩔 수가 없어 육도삼략이라는 병법과 천문지리를 공부하고 있었다. 공이 이 사실을 알고는 크게 근심하여 말했다.
“이 놈이 본래 재주가 있으니, 만일 과분한 마음을 품게 되면 관상녀의 말과 같을 것이니, 이를 장차 어찌하랴?”
이때 초란이 무녀 및 관상녀와 내통하여 공을 놀라게 하고는 길동을 없애고자 거금을 들여 자객을 매수했는데, 그 이름은 특재였다. 초란은 특재에게 전후 내막을 자세히 일러 주고는 공에게 가서 아뢰었다.
“며칠 전 관상녀가 아는 일이 귀신 같으니, 길동의 앞일을 어떻게 처리하려 하십니까? 저도 놀랍고 두려우니 일찍 길동을 없애 버리는 것이 나을듯하옵니다.”
공은 이말을 듣고 눈썹을 찡그리면서,
“이 일은 내 손바닥 안에 있으니, 너는 번거롭게 굴지 말라.”
하고 물리치기는 했으나, 마음이 자연 산란하여 밤이면 잠을 이루지 못해 병이 나고 말았다. 부인과 좌랑 인형이 크게 근심이 되어 어쩔 줄을 모르고 있는데, 초란이 곁에서 모시고 있다가 아뢰었다.
“상공의 병환이 위중하심은 길동으로 인한 것입니다. 저의 좁은 소견으로는 길동을 죽여 없애면 상공의 병환도 완쾌되실

뿐 아니라, 가문도 보존할 것이온데, 어찌 이점을 생각하지 않으시는지요?”
부인이 이르기를,
“아무리 그렇다 한들 천륜이 지중한데 차마 어찌 그런 짓을 하겠나.”
고 하자, 초란이 말했다.
“듣자오니 특재라는 자객이 있는데, 사람 죽이기를 주머니 속의 물건 잡듯히 한답니다. 그에게 거금을 주고 밤에 들어가 해치게 하면, 상공이 아셔도 어쩔 수 없을 것이오니 , 부인은 재삼 생각하십시오.”
부인과 좌랑이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
“이는 차마 못할 바이로되, 첫째는 나라를 위함이요, 둘째는 상공을 위함이며, 셋째는 홍씨 가문을 보존하기 위함이니, 너의 생각대로 하려무나.”
그러자 초란이 크게 기뻐하면서, 다시 특재를 불러 사정을 자세히 이야기하고, 오늘 밤에 급히 행하라 하니, 특재가 그렇게 하겠다 하고 밤 들기를 기다렸다.
한편, 길동은 그 원통한 일을 생각하니 잠시를 머물지 못할 바이지만, 상공의 엄령이 지중하므로 어쩔 수가 없어 밤마다 잠을 설치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 밤, 촛불을 밝혀 놓고 <주역>을 골똘히 읽고 있는데, 까마귀가 세 번 울고 갔다. 길동은 이상한 예감이 들어 혼잣말로,
“저 짐승은 본래 밤을 꺼리거늘, 이제 울고 가니 심히 불길하도다.”
하면서 잠시 <주역>의 팔괘로 점을 쳐 보고는, 크게 놀라 책상을 밀치고 둔갑법으로 몸을 숨긴 채 동정을 살피고 있었다. 사경즘 되자 한 사람이 비수를 들고 천천히 방문으로 들어오는지라, 길동이 급히 몸을 감추고 주문을 외니, 홀연 한 줄기의 음산한 바람이 일어나면서, 집은 간 데 없고 첩첩산중에 풍경이 굉장하였다. 크게 놀란 특재는 길동의 조화가 무궁한 줄 알고 비수를 감추며 피하고자 했으나, 갑자기 길이 끊어지면서 층암절벽이 가로막자, 오도가도 못하는 처지가 되었다. 사방으로 방황하다가 피리 소리를 듣고서야 정신을 차리고 살펴보니, 한 소년이 나귀를 타고 오며 피리 불기를 그치고 꾸짖었다.
“너는 무엇 때문에 나를 죽이려 하는가? 무죄한 사람을 해치면 어찌 천벌이 없으랴?”
하고 주문을 외니, 홀연히 검은 구름이 일어나며 큰 비가 물을 퍼붓듯이 쏟아지고 모래와 자갈이 날리었다. 특재가 정신을 가다듬고 살펴보니 길동이었다. 재주가 대단하다고는 여기면서도 ‘어찌 나를 대적하리오.’하고 달려들면서 소리쳤다.
“너는 죽어도 나를 원망하지 말라. 초란이 무녀와 관상녀로 하여금 상공과 의논하게 하고, 너를 죽이려 한 것이니, 어찌 나를 원망하랴.”
칼을 들고 달려드는 특재를 보자, 길동은 분함을 참지 못해 요술로 특재의 칼을 빼앗아 들고 호통을 쳤다.
“네가 재물을 탐내어 사람 죽이기를 좋아하니, 너같이 무도한 놈은 죽여서 후환을 없애겠다.”
하고 칼을 드니, 특재의 머리가 방 가운데 떨어졌다. 길동은 분노를 이기지 못해 그날 밤에 바로 관상녀를 잡아 와 특재가 죽어 있는 방에 들이쳐 박고 꾸짖기를,
“네가 나와 무슨 원수 졌다고 초란과 짜고 나를 죽이려 했나?”
하고 칼로 치니, 처참하기 그지 없었다.
이때 길동이 두 사람을 죽이고 하늘을 살펴보니, 은하수는 서쪽으로 기울어지고 달빛은 희미하여 마음은 더욱 울적해졌다. 분통이 터져 초란마저 죽이고자 하다가, 상공이 사랑하는 여자라는 데 생각이 미치자, 칼을 던지고 달아나 목숨이나 건지기로 마음먹었다. 바로 상공 침소에 가 하직 인사를 올리고자 하는데, 마침 공도 창 밖의 인기척을 듣고서 창문을 열고 살폈다. 공은 길동임을 알고 불러 말했다.
“밤이 깊었거늘 네 어찌 자지 않고 이렇게 방황하느냐?”
길동은 땅에 엎

드려 아뢰었다.
“소인이 일찍 부모님께서 낳아 길러 주신 은혜를 만분의 일이나마 갚을까 하였더니, 집안에 옳지 못한 사람이 있어 상공께 참소하고 소인을 죽이고자 하기에, 겨우 목숨은 건졌으나 상공을 모실 길이 없기로 오늘 상공께 하직을 고하옵니다.”
하기에, 공이 크게 놀라 물었다.
“너는 무슨 일이 있어서 어린아이가 집을 버리고 어디로 가겠다는 거냐?”
길동이 대답했다.
“날이 밝으면 자연히 아시게 되려니와, 소인의 신세는 뜬 구름과 같사옵니다. 상공의 버린 자식이 어찌 갈 곳이 있겠습니까?”
길동이 두 줄기의 눈물을 감당하지 못해 말을 이루지 못하자, 공은 그 모습을 보고 불쌍한 마음이 들어 타일렀다.
“내가 너의 품은 한을 짐작하겠으니, 오늘부터는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고 형을 형이라 불러도 좋다.”
길동이 절하고 아뢰었다.
“소자의 한 가닥 지극한 한을 아버지게서 풀어 주시니 죽어도 한이 없습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아버지께서는 만수무강하십시오.”
이렇게 말하고 하직하니, 공이 붙잡지 못하고 다만 무사하기만을 당부하더라. 길동이 또 어머니 침소에 가서,
“소자는 지금 슬하를 떠나려 하오나 다시 모실 날이 있을 것이니, 모친은 그 사이 귀체를 아끼십시오.”
하고 작별 인사를 하였다. 춘섬이 이 말을 듣고 무슨 까닭이 있음을 짐작하나 굳이 묻지는 않고 하직하는 아들의 손을 잡고 통곡하면서 말했다.
“네 어디로 가려 하느냐? 한 집에 있어도 거처하는 곳이 멀어 늘 보고 싶었는데, 이제 너를 정처없이 보내고 어찌 잊으랴. 부디 쉬 돌아와 만나기를 바란다.”
길동이 절하고 문을 나와 멀리 바라보니 첩첩한 산중에 구름만 자

욱한데 정처없이 길을 가니 어찌 가련치 않으랴.
한편, 초란은 특재의 소식이 없자 이상하다 싶어 사정을 알아 보라 했더니, 길동은 간 데가 없고 특재와 관상녀의 시신만 방 안에 있더라고 했다. 이에 혼비백산하여 급히 부인에게 알리니, 부인은 크게 놀라 좌랑을 불러 이 일을 이야기하고 상공에게도 알렸다. 이 소식에 접한 상공은 대경실색하며 말했다.
“길동이 밤에 와 슬피 하직하기에 이상하다 여겼더니, 결국 이런 일이 벌어졌구나.”
이에 좌랑이 감히 숨기지 못하여 초란이 그 동안에 한 일을 아뢰었더니, 공은 더욱 분노하여 초란을 내쫓고 슬그머니 그들의 시체를 없앤 후, 종들을 불러 이런 말을 내지 말라고 당부하였다.
그 무렵, 길동은 부모와 이별하고 정처없이 떠돌다가, 어떤 경치 좋은 곳에 이르렀다. 인가를 찾아 점점 들어가니 큰 바위 밑에 돌문이 닫혀 있었다. 가만히 그 문을 열고 들어가자 평원광야가 나타나는데, 거기에는 수백 호의 인가가 즐비하고, 여러 사람이 모여 잔치를 하며 즐기고 있었으며, 알고 보니 그곳은 도적의 소굴이었다. 한 사람이 길동을 보고 예사롭지 않다는 듯 반겨 말했다.
“그대는 어떤 사람이기에 이곳에 찾아 왔소? 이곳에는 영웅이 모여 있으나, 아직 우두머리를 정하지 못하고 있으니, 그대가 만일 용력이 있어 참여할 마음이 나면 저 돌을 들어 보시오.”
길동이 이 말을 듣고 다행히 여겨 절하고 말했다.
“나는 경성 홍판서의 서자 길동인데, 집에서 천대받기가 싫어서 아무데나 정처없이 다니다가, 우연히 이곳에 들어왔소. 마침 모든 호걸들이 동료되기를 바라니 대단히 감사하거니와, 장부가 어찌 저만한 돌 들기를 근심하리오.”
하고, 그 돌을 들어 수십 보를 걷다가 던졌는데, 그 돌 무게는 천 근이었다. 여러 도적들이 일시에 칭찬하기를,

“과연 장사로다. 우리 수천 명 중에 이 돌 드는 자가 없더니, 오늘 하늘이 도와 장군을 내려 주셨도다.”
하고, 길동을 윗 자리에 앉힌 뒤, 차례로 술을 권하며 옛날 의례대로 흰말을 잡아 맹서하면서 언약을 굳게 맺었다. 이에 많은 사람들이 일시에 응락하고 온 종일 즐기며 놀았다. 그 후 길동은 여러 사람과 더불어 무예를 연습해 수개월 안에 군법을 엄히 세웠다.
하루는 여러 사람들이 하나의 제의를 했다.
“우리가 벌써부터 합천 해인사를 쳐 그 재물을 빼앗고자 하였으나, 지략이 부족하여 실천에 옮기지 못했는데, 이제 장군님 의견은 어떠하신지요?”
길동은 웃으며,
“내가 장차 출동한 터이니, 그대들은 내 지휘대로만 하라.”
하고는, 푸른 도포에 검은 띠를 띠고 나귀 등에 올랐다. 부하 몇 명도 데리고 갔다.
“내가 그 절에 가서 동정을 살펴보고 오겠다.”
고 하며 가는 뒷모습이 완연한 재상가 자제였다. 그 절에 들어가 주지에게 먼저 말했다.
“나는 경성 홍판서댁 자제다. 이 절에 공부를 하려고 왔는데, 내일 백미 이십 석을 보낼 것이니, 음식을 깨끗이 장만하라. 너희들과 함께 먹겠다.”
하고는, 절 안을 두루 살펴보며 뒷날을 기약하고 동구를 나오니 모든 중들이 기뻐하였다.
길동이 돌아와 백미 수십 석을 보내고 부하들을 불러 놓고 말했다.
“내가 아무 날 그 절에 가 이리이리 할 것이니, 그대들은 뒤를 따라와 이리이리 하라.”
그날이 다가와 부하 수십 명을 데리고 해인사에 이르렀더니, 중들이 맞이해 들어갔다. 길동이 노승을 불러,
“내가 보낸 쌀로 음식이 부족하지 않던가?”
하니 노승이,

“어찌 부족하겠습니까. 너무 황감하였습니다.”
고 하였다. 길동이 맨 윗 자리에 앉아, 모든 중을 일제히 청해 각기 상을 받게 하고는, 먼저 술을 마시며 차례로 권하니 , 모든 중이 황감해 하였다. 길동이 상을 받고 먹다가 모래를 슬그머니 입에 넣고 깨무니, 소리가 크게 났다. 중들이 듣고 놀라 사과를 했지만, 길동은 일부러 화를 내어 꾸짖었다.
“너희들이 음식을 어찌 이다지 깨끗하지 않게 했느냐? 이는 반드시 나를 깔보고 업신여기는 짓이다.”
하고, 부하들을 시켜 모든 중을 한 줄에 결박하여 앉히니, 모두가 겁이나서 어쩔 줄을 몰랐다. 이윽고 수백 명이 일시에 달려들어 모든 재물을 제 것 가져가듯 하니, 중들이 보고 다만 입으로 소리만 지를 따름이었다. 외출했던 불목한이 마침 그때 돌아오다가 이 일을 보고 관가에 알리니, 합천 원이 관군을 뽑아 그 도적을 잡게 했다. 장교 수백 명이 도적을 쫓다가 문득 보니 송낙을 쓰고 장삼을 입은 중이 산에 올라가 외쳤다.
“도적이 저 북쪽의 작은 길로 가니 빨리 가 잡으시오.”
관군들은 그 절 중이 가르치는 줄 알고, 풍우같이 북쪽의 작은 길로 찾아 가다가 잡지도 못하고 날이 저문 후에 돌아갔다. 길동은 부하들을 남쪽의 큰길로 보내고 홀로 중의 차림으로 관군을 속여 무사히 소굴로 돌아오니, 모든 부하들이 이미 재물을 가져다 놓고 있었다. 그들이 함께 사례하기에 길동은 웃으며,
“장부가 이민한 재주 없대서야 어찌 여러 사람의 우두머리가 되리오.”
했다.
그 후, 길동은 스스로 호를 활빈당이라고 하면서 조선 팔도로 다니며 각읍 수령이 불의로 모은 재물이 있으면 탈취하고, 혹시 가난하고 의지할 데 없는 사람이 있으면 구제하되, 백성은 침범하지 않고 나라의 재산에는 추호도 손을 대지 않았다. 그래서 부하들은 그 뜻에 감복하였다.

“이제 함경 감사가 탐관오리로 백성을 착취해 견딜 수 없게 되었는지라, 우리가 그대로 둘 수 없으니, 그대들은 나의 지휘대로 하라.”
하고는, 아무 날 밤으로 약속을 하고, 하나씩 흘러 들어가 남문밖에 불을 질렀다. 감사가 크게 놀라 불을 끄라 하니, 관리며 백성들이 한꺼번에 달려나와 불을 끄는데, 길동의 부대 수백 명이 함께 성중에 달려들어 창고를 열고 곡식과 무기를 찾아 내어 북문으로 달아나니, 성중이 물 긇듯이 요란해졌다. 감사가 뜻밖의 변을 당하여 어쩔 줄을 모르다가 날이 밝은 후 살펴보고서야 창고의 무기와 곡식이 없어졌음을 알고 크게 놀라 도적 잡기에 전력을 기울였다. 그런데 홀연 북문에 방이 붙기를 ‘아무 날 돈과 곡식을 도적한 자는 활빈당 당수 홀길동이라’ 하였기에, 감사가 군사를 징발하여 도적을 잡으려 하였다.
한편, 길동이 여러 부하와 함께 곡식을 많이 훔쳤으나, 행여 길에서 잡힐까 염려하여 둔갑법과 축지법을 써서 처소에 돌아오니, 날이 새려 하였다.
하루는 길동이 여러 부하를 모으고 말했다.
“이제 우리가 합천 해인사에 가 재물을 탈취하고 또 함경 감영에 가 돈과 곡식을 훔쳐서 소문이 파다하려니와, 나의 이름을 써서 감영에 붙였으니 오래지 않아 잡히기 쉬울 것이다. 그러나 그대들은 나의 재주를 보라.”
하고 즉시 초인 일곱을 만들어 주문을 외며 혼백을 붙였다. 일곱 길동이 한거번에 팔을 뽐내며 크게 소리치고 한 곳에 모여 야단스럽게 지껄이니, 어느 것이 진짜 길동인지 알 수가 없었다. 팔도에 하나씩 흩어지되, 각각 사람 수백 명씩 거느리고 다니니, 그 중에서도 어느 것이 진짜인지 알 수가 없었다. 여덟 길동이 팔도에 다니며 바람과 비를 마음대로 불러오는 술법을 부려 각읍 창고에 있던 곡식을 하룻밤 사이에 종적없이 가져가며, 지방에서 서울로 올려 보내는 선물 보퉁이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탈취하니, 팔도의 각읍이 시그러워져서

사람들이 밤에는 잠을 설치고 낮에는 길에 나다니지 못하였다. 이 때문에 팔도가 요란해지자, 감사가 공문을 올렸는데, 그 내용은 대개 이러했다.
“난데없는 홍길동이라는 대적이 신통한 술법을 부려 각읍의 재물을 탈취하고 서울로 보내는 물품을 가라막아 폐단이 자심하니, 그 도적을 잡지 않으면 장차 어느 지경에 이를지 알지 못할 정도이오니, 엎드려 바라건대 성상께서는 좌우 두 포도청에 명하여 잡게 하옵소서.”
임금이 보고 크게 놀라 포도대장을 부르고 있는데, 계속 팔도에서 공문이 올라왔다. 연이어 떼어 보니 도적의 이름을 다 홍길동이라 하였고, 돈과 곡식 잃은 날짜를 보니 한 날 한 시였다. 임금이 크게 놀라 말하기를,
“이 도적의 용맹과 술법은 예날 중국의 도적 치우라도 당하지 못하겠도다. 아무리 신기한 놈인들 한 몸이 팔도에 있어서 한 날 한 시에 어떻게 도적질을 하리오? 이는 보통 도적이 아니어서 잡기 어렵겠으니, 좌포장과 우포장이 군사를 내어서 잡으라.”
하니, 이때 우포장 이흡이 아뢰었다.
“신이 비록 재주는 없으나 그 도적을 잡아 오겠사오니, 전하께서는 근심하지시 마십시오. 이제 좌우포장이 어찌 한꺼번에 출전하겠습니까?”
임금이 옳다고 여겨 급히 출발하기를 재촉하니, 이흡이 하직한 후 수많은 관졸을 거느리고 출발하면서, 각각 흩어져 아무 날 문경에 모이기로 약속하였다. 이흡은 약간의 포졸들을 데리고 변복한 채 다니고 있었다.
하루는 날이 저물어 주점을 찾아 쉬고 있는데, 갑자기 어떤 소년이 나귀를 타고 들어와 인사를 하였다. 포장이 답례를 하니, 그 소년은 갑자기 한숨을 지으면서 말했다.
“온 천하가 임금의 땅 아님이 없고, 모든 땅의 백성이 임금의 신하 아님이 없으니, 소생이 비록 시골에 있으나 나라를 위해 근심을 하고 있습니다.”
포자잉

일부러 놀라는 체하며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오?”
소년이 말했다.
“이제 홍길동이라는 도적이 팔도로 다니며 소란을 피워 인심이 동요하고 있는데, 그 놈을 잡아 없애지 못하니 어찌 분하지 않겠습니까?”
포장이 이 말을 듣고 말했다.
“그대가 기골이 장대하고 말씀이 충직하니, 나와 함께 그 도적을 잡는 것이 어떻겠소?”
소년이 말했다.
“내가 벌써 잡고자 하면서도 용력 있는 사람을 만나지 못하여 그냥 있었는데, 이제 그대를 만났으니 어찌 다행이 아니겠소? 그러나 그대의 재주를 알 수 없으니 그윽한 곳에 가서 시험합시다.”
하고 가다가, 한 곳에 이르러 높은 바위 위에 올라앉으면서 말했다.
“그대는 힘을 다하여 두 발로 나를 차 떨어뜨리라.”
하고, 벼랑 끝에 나가 앉았다. 포장이 생각하되, ‘제 아무리 용력이 있은들 한번 차면 어찌 떨어지지 않으리오.’ 하고, 평생 힘을 다하여 두 발로 힘껏 차니 그 소년이 갑자기 돌아앉으며 말했다.
“그대는 정말 장사로다. 내가 여러 사람을 시험해 보았지만, 나를 움직이게 한 자가 없었는데, 그대에게 차이어 오장이 울린 듯하도다. 그대가 나를 따라 오면 길동을 잡을 것이오.”
하고 첩첩산중으로 들어가기에, 포장이 생각하되 ‘나도 힘을 자랑할 만 하더니 오늘 저 소년의 힘을 보니 어찌 놀랍지 않은가! 그러나 이곳까지 왔으니 설마 저 소년 혼자인들 길동 잡기를 근심하리오.’ 하고 따라갔다. 그 소년이 갑자기 돌아서면서,
“이곳이 길동의 소굴인데, 내가 먼저 들어가 탐지할 것이니, 그대는 여기서 기다리라.”
고 했다. 포장은 속으로 의심은 되었으나, 빨리 잡아 오라고 당부하고는 앉아 있었다.

이윽고 홀연히 계곡으로부터 수십 명의 군졸들이 요란하게 소리를 지르며 내려오고 있었다. 포장이 크게 놀라 피하고자 하는데, 점점 가까이 와 포장을 묶으면서 꾸짖었다.
“네가 포도대장 이흡인가? 우리들이 저승의 왕명을 받아 너를 잡으러 왔다.”
하고, 쇠사슬로 목을 옭아 풍우같이 몰아가니, 포장이 혼이 빠져 어쩔 줄을 몰랐다. 한곳에 이르러 소리를 지르며 꿇어 앉히기에, 포장이 정신을 가다듬어 쳐다보니, 궁궐이 광대한데 무수한 신장들이 주위에 벌여서 있고, 전상에 하나의 임금이 앉아 성난 목소리로 말했다.
“네 하찮은 놈이 어찌 홍장군을 잡으려 하는가? 너를 잡아 지옥에 가두겠다.”
포장이 겨우 정신을 차려,
“소인은 인간 세상의 보잘것없는 사람인데, 죄도 없이 잡혀 왔으니, 살려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하고 몹시 애걸하니, 전상에서 웃으며 꾸짖었다.
“이 사람아. 나를 자세히 보라. 나는 곧 활빈당 우두머리 홍길동이다. 그대가 나를 잡으려 하기에 그 용력과 뜻을 알고자, 어제 내가 푸른 도포 입은 소년처럼 꾸며 그대를 인도해 이곳에 와서 나의 위엄을 보여 주는 것이다.”
말을 마치자, 부하들을 시켜 묶은 것을 끌렀다. 마루에 앉히고 술을 내어와 권하면서 다시 말했다.
“그대는 부질없이 다니지 말고 빨리 돌아가되, 나를 보았다 하면 반드시 죄를 추궁당할 것이니, 부디 그런 말은 내지 말라.”
이렇게 말하고는, 다시 술을 부어 권하면서 부하들에게 내어 보내라 하였다.
포장이 생각하되 ‘내가 이것이 꿈인가 생시인가? 여기에는 어찌하여 왔을까?’ 하며 길동의 신기한 조화에 놀라 일어나 가고자 했다. 그러나 홀연 팔다리를 움직일 수 없었다. 괴이하다는 생각이 들어 정신을 차리고 살펴보니, 자신이 가죽 부대

속에 들어 있었다. 간신히 나와 보니 부대 셋이 나무에 걸려 있었다. 차례로 끌러 내어 보니, 처음 떠날 때 데리고 왔던 부하들이었다. 서로 이르기를,
“이게 어찌된 일인고? 우리가 떠날 때는 문경으로 모이자 하였는데, 어찌 이곳에 왔을까?”
하고 두루 살펴보니, 다른 곳도 아니고 서울의 북악산이었다. 네 사람이 어이없어 성 안을 굽어보며 하인에게 물었다.
“너는 어째서 여기 왔느냐?”
세 사람이 아뢰엇다.
“소인들은 주점에서 자고 있었는데, 갑자기 바람과 구름에 싸이어 이리 왔사오니, 어찌된 까닭인지 알지를 못하겠습니다.”
포장이,
“이 일이 너무나 허무맹랑하니 남에게 말하지 말라. 러나 길동의 재주는 헤아릴 수 없으니 사람의 힘으로써야 어찌 잡겠는가? 우리가 이제 그저 들어가면 반드시 죄를 면치 못할 것이니, 아직 몇 달을 기다리다가 들어가자.”
하고 나왔다.
이때, 임금이 팔도에 공문을 내려 길동을 잡도록 하였지만, 그 조화가 무궁하여 서울의 큰길에 혹은 수레를 타고 왕래하고, 혹은 각 고을에 도착 날짜를 미리 공문으로 알려 놓고는 가마를 타고 왕래하기도 하며, 혹은 어사의 모습을 꾸며 탐관오리의 목을 자르고 임금에게 보고하되 임시어사 홍길동이 올리는 공문이라 했다. 이에 임금은 더욱 진노하여,
“이 놈이 각도에 다니며 이런 난리를 치는데도 아무도 잡지 못하니, 이를 장차 어찌하리오?”
하면서 삼정승과 육판서를 모아 놓고 의논을 하고 있었다. 그때 연이어 공문이 올라왔는데, 다 팔도에 홍길동이 작란한다는 내용의 공문이었다. 임금이 차례대로 보고는 크게 근심하여 주위를 돌아보면서 물었다.
“이 놈이 아마 사람은 아니고 귀신인 것 같소. 조신 중에서 누가 그 근본을 짐

작할 수 있겠소?”
한 사람이 나와서 아뢰었다.
“홍길동은 전임 이조판서 홍아무개의 서자요, 병조좌랑 홍인형의 서제이오니, 이제 그 부자를 잡아 와서 친히 문초하시면 자연히 아실까 하옵니다.”
임금이 더욱 화를 내어.
“이런 말을 어찌 이제야 하는가?”
하고는, 즉시 그렇게 하도록 명령했다. 홍아무개는 의금부에 가두고, 먼저 인형을 잡아들여 임금이 몸소 문초를 하였다. 임금이 진노하여 책상을 치며 꾸짖었다.
“길동이라는 도적이 너의 서제라는데, 어찌 조치하지 않고 그냥 두어 국가에 큰 재앙이 되게 한단 말인가? 네가 만일 잡아들이기 않으면, 네 부자의 충효도 돌아보지 않을 것이니, 빨리 자바들여 나라에 대변이 없게 하라.”
인형이 황공하여 관을 벗고 머리를 조아리며 아뢰었다.
“신의 천한 아우가 있어 일찍 사람을 죽이고 달아난 지 몇 년이나 지났으되, 그 생사를 알지 못하여 신의 늙은 아비 그 때문에 신병이 위중한 나머지 목숨이 끊어질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길동이 착하지 못하여 성상께 근심을 끼쳤으니, 신의 죄는 만 번 죽어도 애석하지 않사옵니다. 그러나 엎드려 바라옵건대, 전하께서는 자비로운 은택을 내려 신의 아비 죄를 용서하시와, 집에 돌아가 조리하게 하시면, 신이 죽음으로써 맹서하고 길동을 잡아 저희 부자의 죄를 면하올까 하옵니다.”
임금이 다 듣고 나자 감동하여 즉시 홍아무개를 사면하고, 인형에게 경상 감사를 제수하면서 말했다.
“경이 만일 길동을 잡지 못하면 감사로서의 능력이 없다고 볼 것이니라. 기한을 1년으로 정하여 주니 쉬 잡아 들이라.”
인형이 수없이 절하며 은혜를 감사하고 임금께 하직하였다. 바로 그날 출발을 하여 감영에 도착하여, 감사로 부임해서는 각읍에 공고문을 붙였다. 그 내용은 길동을 달래는 것이었는데, 다음과 같았다.
“사람이 세상에 남에, 오륜이 으뜸이요, 오륜이 있음으로써 인의예지가 분명하거늘, 이를 알지 못하고 임금과 부모의 명을 거역해 불충불효가 되면 어찌 세상에 용납하리요. 우리 아우 길동은 이런 일을 알 것이니 스스로 형을 찾아와 사로잡히라. 아버지께서 너로 말미암아 고칠 수 없는 병환이 들고, 성상께서 크게 근심하시니, 너의 죄악은 가득 차서 넘치는 셈이다. 이 때문에 나를 특별히 감사로 임명하여 너를 잡아 들이라 하신다. 만일 잡지 못하면 우리 홍씨 집안의 여러 대에 걸친 깨끗한 덕이 하루 아침에 없어지리니, 어찌 슬프지 않으랴. 바라나니 아우 길동은 이를 생각하여 일찍 자
수하면 너의 죄도 덜릴 것이요, 우리 가문도 보존할 것이니, 너는 만번 생각하여 자수하라.“
감사가 이 공문을 각읍에 붙인 뒤 공무를 전폐한 채 길동이 자수하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하루는 나귀를 탄 소년 하나가 하인 수십 명을 거느리고 병영 문 밖에와 뵙기를 청한다 하기에, 감사가 들어오라 하니, 그 소년이 당상에 올라와 인사를 했다. 감사가 눈을 들어 자세히 보니 그토록 기다리던 길동인지라, 기쁘고도 놀라와 주위 사람들을 물러가게 하고, 손을 잡고 흐느껴 울면서 말했다.
“길동아, 네가 한 번 집을 떠난 뒤 생사를 알지 못하여 아버지께서는 고칠 수 없는 병을 얻으셨다. 너는 갈수록 불효를 끼칠 뿐 아니라 나라에 큰 근심이 되게 하니, 무슨 마음으로 불충불효를 하며 또한 도적이 되어 세상에 비할 데 없는 죄를 짖느냐? 이 때문에 성상께서 진노하시어 나로 하여금 너를 잡아들이도록 하셨다. 이는 피치 못할 죄이니 너는 일찍 서울로 올라가 왕명에 순종해라.”
하고 말을 마치며 눈물을 비오듯 흘렸다. 길동은 머리를 숙이고 말했다.
“제가 여기에 이른 것은 부형을 위태로움으로부터 구하기

위한 것이니, 어찌 다른 말이 있겠습니까? 대감께서 당초에 천한 길동을 위하여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게 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게 하셨던들 어찌 여기까지 이르렀겠습니까? 지나간 일은 말해 봐야 쓸데없거니와, 이제 소제를 묶어 서울로 올려보내십시오.”
하고는 다시 말이 없었다. 감사는 이 말을 듣고 한편 슬퍼하면서 한편 공문을 쓰고는 길동의 목에 칼을 채우고 발에 차꼬를 채워 죄인 호송용 수레에 태웠다. 건장한 장교 십여 명을 뽑아 호송하게 한 뒤, 주야로 갑절의 길을 가도록 시켜 올려 보냈다. 각 읍 백성들은 길동의 재주를 들었는지라, 잡아 온다는 소문을 듣고 길에 모여 구경을 하였다.
이때, 팔도에서 다 길동을 잡아 올리니, 조정과 서울 사람들이 어찌된 영문인지를 아무도 몰랐다. 임금이 놀라서 온 조정의 신하들을 모으고, 몸소 죄인을 다스리는데, 여덟 명의 길동을 잡아 올리니 그들이 서로 다투면서 말하기를,
“네가 진짜 길동이지 나는 아니다.”
하며 서로 싸우니, 어느 것이 진짜 길동인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임금이 괴이히 여겨 즉시 홍아무개를 불러 말했다.
“자식을 알아 보는 데는 아비만한 자가 없다 하니, 저 여덟 중에서 경의 아들을 찾아 내라.”
홍공이 황공하여 머리를 조아리면서 아뢰었다.
“신(臣)의 천한 자식 길동은 왼편 다리에 붉은 혈점이 있사오니, 그것으로써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여덟 길동을 꾸짖기를,
“지척에 임금님이 계시고 아래로 아비가 있는데, 네가 이렇듯 천고에 없는 죄를 지었으니 죽기를 아끼지 말라.”
하고 피를 토하면서 엎어져 기절을 하였다. 임금이 크게 놀라 궐내의 약국에 지시해 치료하게 하였으나, 효험이 없었다. 여덟 길동이 이를 보고 일시에 눈물을 흘리면서 주머니에서 환약 한 개씩을 내어 입에 드리우니, 홍공이 잠시 후 정신을 차렸다.
길동 등이 임금에게 아뢰었다.
“신의 아비가 나라의 은혜를 많이 입었사온데, 신이 어찌 감히 나쁜 짓을 하오리까마는, 신은 본래 천한 종의 몸에서 났는지라, 그 아비를 아비라 못하옵고 그 형을 형이라 못하와, 평생 한이 맺혔기에 집을 버리고 도적의 무리에 참여하였사옵니다. 그러나 백성은 추호도 범하지 않고 각 읍 수령이 백성들을 들볶아 착취한 재물만 빼앗았을 뿐입니다. 이제 십년이 지나면 조선을 떠나 갈 곳이 있사오니, 엎드려 빌건대 성상께서는 근심하지 마시고 신을 잡으라는 공문을 거두어 주십시오.”
하고, 말을 마치며 여덟 명이 한꺼번에 넘어지므로, 자세히 보니 다 풀로 만든 허수아비였다. 임금이 더욱 놀라며 진짜 길동을 잡으라는 공문을 다시 팔도에 내렸다.
길동이 허수아비를 없애고 두루 다니다가 사대문에 글을 써 붙였는데, 그 글에다,
“소신 길동은 아무리 하여도 잡지 못할 것이오니, 병조판서 벼슬을 내리시면 잡히겠습니다.”
고 하였다. 임금이 그 글을 보고 신하들을 모아 의논하니, 여러 신하들이 말했다.
“이제 그 도적을 잡으려 하다가 잡지 못하고 도리어 병조판서를 제수하심은 이웃 나라에도 창피스러운 일입니다.”
임금이 옳다고 여기고 다만 경상 감사에게 길동 잡기를 재촉하니, 경상 감사가 왕명을 받고는 황공하고 죄송하여 어쩔 줄을 몰랐다.
하루는 길동이 공중으로부터 내려와 절하고 말했다.
“제가 지금은 진짜 길동이오니, 형님께서는 아무 염려 마시고 결박하여 서울로 보내십시오.”
감사가 이 말을 듣고는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
“이 철없는 아이야. 너도 나와 동기인데 부형의 가르침을 듣지 않고 온 나라를

떠들썩 하게 하니, 어찌 애닯지 않으랴. 네가 이제 진짜 몸이 와서 나를 보고 잡혀 가기를 자원하니 도리어 기특한 아이로다.”
하고, 급히 길동의 왼쪽 다리를 보니, 과연 혈점이 있었다. 즉시 팔다리를 단단히 묶어 죄인 호송용 수레에 태운 뒤, 건장한 장교 수십 명을 뽑아 철통같이 싸고 풍우같이 몰아 가도, 길동의 안색은 조금도 변치 않았다. 여러 날만에 서울에 다다랐으나, 대궐 문에 이르러 길동이 한 번 몸을 움직이자, 쇠사슬이 끊어지고 수레가 깨어져, 마치 매미가 허물 벗듯 공중으로 올라가며, 나는 듯이 운무에 묻혀 가 버렸다. 장교와 모든 군사가 어이없어 다만 궁중만 바라보며 넋을 잃을 따름이었다. 어쩔 수 없이 이 사실을 보고 하니, 임금이 듣고,
“천고에 이런 일이 어디 있으랴?”
하며, 크게 근심을 했다. 이에 여러 신하 중 한 사람이 아뢰기를,
“길동의 소원이 병조판서를 한 번 지내면 조선을 떠나겠다는 것이라 하오니, 한 번 제 소원을 풀면 제 스스로 은혜에 감사하오리니, 그때를 타 잡는 것이 좋을까 하옵니다.”
고 했다. 임금이 옳다 여겨 즉시 길동에게 병조판서를 제수하고 사대문에 글을 써 붙였다.
그때 길동이 이 말을 듣고 즉시 고관의 복장인 사모관대에 서띠를 띠고 덩그런 수레에 의젓하게 높이 앉아 큰 길로 버젓이 들어오면서 말하기를,
“이제 홍판서 사은(謝恩)하러 온다.”
고 했다. 병조의 하급 관리들이 맞이해 궐내에 들어간 뒤, 여러 관원들이 의논하기를,
“길동이 오늘 사은하고 나올 것이니 도끼와 칼을 쓰는 군사를 매복시켰다가 나오거든 일시에 쳐 죽이도록 하자.”
하고 약속을 하였다. 길동이 궐내에 들어가 엄숙히 절하고 아뢰기를,
“소신이 죄악이 지중하온데, 도리어 은혜를 입사

와 평생의 한을 풀고 돌아가면서 전하와 영원히 작별하오니, 부디 만수무강하소서.”
하고, 말을 마치며 몸을 공중에 솟구쳐 구름에 싸여 가니, 그 가는 곳을 알 수가 없었다. 임금이 보고 도리어 감탄을 하기를,
“길동의 신기한 재주는 고금에 드문 일이로다. 제가 지금 조선을 떠나노라 하였으니, 다시는 페 끼칠 일이 없을 것이요, 비록 수상하기는 하나 일단 대장부다운 통쾌한 마음을 가졌으니 염려 없을 것이로다.”
하고, 팔도에 사면(赦免)의 글을 내려 길동 잡는 일을 그만두었다.
한편, 길동이 제 곳에 돌아와 부하들에게 명령하기를,
“내가 다녀 올 곳이 있으니, 너희들은 아무데도 출입하지 말고 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라.”
하고, 즉시 몸을 솟구쳐 남경으로 향하여 가다가 한 곳에 다다르니, 거기는 소위 율도국이었다. 사면을 살펴보니 산천이 깨끗하고 인물이 번성하여 편안하게 살 만한 곳이었다. 남경에 들어가 구경한 뒤, 또 제도라 하는 섬에 들어가 두루 다니면서 산천도 구경하고 인심도 살피다가 오봉산에 이르니, 정말 제일 강산이었다. 둘레가 칠백 리요, 기름진 논이 가득하여 살기에 정말 합당하였다. 마음 속으로 생각하기를 ‘내 이미 조선을 하직하였으니, 이곳에 와 은거하였다가 큰 일을 꾀하리라.’ 하고 가벼운 걸음으로 본 곳에 돌아와 여러 부하에게 말했다.
“그대는 아무 날 양천강변에 가서 배를 많이 만들어 몇월 며칠 경성 한강에서 기다리라. 내 임금께 청해 벼 일천 석을 구해 올 것이니, 약속을 어기지 말라.”
한편, 홍공은 길동의 작란이 없으므로 신병이 쾌차하고, 임금 또한 근심없이 지내게 되었다. 당시는 구월 보름께였는데, 임금이 달빛을 받으며 후원을 배회하고 있을 때, 갑자기 한 줄기의 맑은 바람이 일어나며 공중에서 피리 소리가 맑게 울려오는 가운데, 한 소년이 내려와 임금 앞에 엎드렸다. 임금은 놀라서 물었다.
“선동(仙童)이 어찌 인간 세상에 내려왔으며 무엇을 하려 하느뇨?”
소년은 땅에 엎드려 아뢰기를,
“신은 전임 병조판서 홍길동이옵니다.”
임금이 놀라 물었다.
“네가 깊은 밤에 어찌 왔느냐?”
길동이 대답해 가로되,
“신이 전하를 받들어 만세를 모실까 했으나, 제가 천한 종의 몸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문(文)으로는 홍문관이나 예문관 벼슬 길이 막혀 있고, 무(武)로는 선전관 벼슬 길에 막혀 있습니다. 이런 까닭으로 사방을 멋대로 떠돌아다니면서 관청에 폐를 끼치고 조정에 죄를 지었던 것이온데, 이는 전하로 하여금 아시게 하려 함이었습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만수무강하십시오.”
하고, 공중으로 올라가 나는 듯이 가거늘, 임금이 그 재주를 못내 칭찬하였다. 그 후로는 길동의 폐단이 없으니, 사방이 태평하였다.
길동이 조선을 하직하고, 남경 땅 제도라는 섬으로 들어가, 수천 호의 집을 지은 뒤, 농업에 힘쓰고 무기 창고를 지으며 군법을 연습하니, 병사는 잘 훈련되고 양식은 풍족하게 되었다.
하루는 길동이 화살 촉에 바를 약을 구하러 망당산으로 가다가 낙천 땅에 이르렀다. 그곳에는 부자 백룡이라는 사람이 딸 하나를 두고 있었는데, 재질이 비상하여 애중하게 여기는 터였으나, 어느 날 광풍이 크게 불면서 그 딸이 없어져 버렸다. 그러자 백룡 부부는 슬퍼하면서 많은 돈을 들여 사방으로 찾았으나 종적이 없었다. 부부는 슬픔에 젖어 말을 퍼뜨리기를 ‘누구라도 내 딸을 찾아 주면, 재산의 반을 주고 사위를 삼으리라.’고 하였다.
길동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측은하였으나 하릴없어 망당산에 가서 약초를 캐며 들어가다가 날이 저물어 주저하고 있는데, 갑자기 사람 소리가

나며 등불이 밝게 비쳤다. 그곳을 찾아가니 사람이 아닌 미물이 앉아 지껄이고 있었다. 원래 이 짐승은 울동이라는 짐승인데, 여러 해를 묵어 변화가 무궁하였다. 길동이 몸을 감추고 활로 쏘니, 그 중 괴수가 맞았다. 그러자 모두 소리를 지르며 달아나기에, 길동은 나무에 의지하여 밤을 지내고 두루 돌아다니면서 약을 캐더니, 갑자기 괴물 몇이서 길동을 보고 물었다.
“그대는 무슨 일로 이 깊은 곳에 이르렀소?”
길동이 대답했다.
“내가 의술을 아는 고로 이 산에 들어와 약을 캐는 중인데, 그대들을 만났으니 다행이오.”
그것이 대답하기를,
“나는 이곳에 산 지 오래더니, 우리 왕이 부인을 새로 정하고 어제 밤에 잔치를 하다가 하늘에서 내린 살[惡氣]을 맞아 위중한지라, 그대가 명의라하니 선약(仙藥)으로 왕의 병을 고치면 중상을 받으리라.”
하였다. 길동이 생각하되 ‘이 놈이 어제 밤에 상한 놈이로다.’하고 허락하였다. 그것이 길동을 인도하여 문에 세우고 돌아가더니, 이윽고 청하기에 길동이 들어가 보니 그림으로 장식한 집이 넓고도 아름다운데, 그 가운데 흉악한 것이 누워 신음하다가 길동을 보자 몸을 움직이면서 말했다.
“내가 우연히 천살을 맞아 위독했는데, 애들의 말을 듣고 그대를 청하였으니, 이는 하늘이 나를 살린 것이라. 그대는 재주를 아끼지 말라.”
길동이 감사의 뜻을 표하고 말했다.
“먼저 몸의 내부를 치료할 약을 쓰고, 다음으로 외부를 치료할 약을 쓰는 것이 좋을까 하노라.”
그것이 응락하거늘, 길동이 약주머니에서 독약을 내어 급히 온수에 타서 먹이니, 한참만에 한 마디 소리를 지르고 죽는지라, 모든 요괴가 일시에 달려들었다. 길동은 신통술을 부려 모든 요괴를 후려치는데, 갑자기 두 젊은 여자가 애걸하였다.

“저희는 요괴가 아니라 세상 사람인데 잡혀 왔사오니, 남은 목숨을 구하여 세상으로 나가게 하소서.”
길동은 백룡의 일을 생각하고 거주지를 물었더니, 하나는 백룡의 딸이요, 하나는 조철의 딸이었다. 길동의 요괴를 깨끗이 없애 버리고, 두 여자를 구출해 각각 제 부모에게 돌려 주니, 그 부모들은 크게 기뻐하면서 그날로 홍생을 맞아 사위를 삼았는데, 첫째 부인은 백소저요, 둘째 부인은 조소저였다. 길동이 하루 아침에 두 아내를 얻은 후, 두 집 가족을 거느리고 제도섬으로 가니, 모든 사람이 반기며 치하하였다.
하루는 천문을 보다가 놀라 눈물을 흘리기에, 주위에서 무슨 까닭으로 슬퍼하느냐고 물으니, 길동이 탄식하면서 말하기를,
“내가 부모의 안부를 하늘의 별을 보고 짐작하더니, 지금 하늘을 본즉 부친의 병세가 위증하신지라, 그러나 나의 몸이 먼 곳에 있어 거기에 이르지 못할까 하노라.”
하니 모든 사람들이 슬퍼하였다. 이튿날 길동은 월봉산에 들어가 하나의 훌륭한 묘터를 구한 후, 일을 시작하여 석물(石物)을 국릉과 같이 하였다. 그러고는 한 척의 큰 배를 준비하여 부하들에게 조선국 서강 강변으로 몰고 가서 기다리라 하였다. 자신은 즉시 머리를 깎고 중의 모습을 갖춘 뒤, 작은 배 한 척을 타고 조선을 향하였다.
이 무렵, 홍판서는 홀연히 병을 얻어 위증해지자, 부인과 인형을 불러 말하기를,
“내가 죽어도 다른 한이 없으나, 길동의 생사를 알지 못하는 것이 한스럽구나. 제가 살아 있으면 찾아올 것이니, 적서를 구분하지 말고 제 어미를 잘 대접해라.”
하고, 숨이 끊어지니, 온 집안이 슬픔에 잠겨 장사를 치르고자 하나, 묘터를 구하지 못해 난처하였다.
하루는 문지기가 알리기를,
“어떤 중이 와서 영위(靈位)에 조문(弔問)하려 합니다.”

고 했다. 이상하게 여겨 들어오라 했더니, 그 중이 들어와 목을 놓아 크게 우니, 모든 사람이 곡절을 몰라 서로 얼굴만 돌아보았다. 그 중이 상주에게 한 번 통곡한 뒤 말하기를,
“형님께서 어찌 아우를 몰라보십니까?”
고 했다. 상주가 자세히 보니, 곧 길동이라 붙잡고 통곡하며,
“아우냐. 그 사이 어디 갔더냐? 아버지께서 평소에 유언이 간절하셨는데, 이제 오니 어찌 자식의 도리이겠는가?”
하며, 손을 이끌고 내당에 들어가 모부인을 뵈옵고 춘섬을 상면케 하였다. 한바탕 통곡한 뒤 묻기를,
“네가 어찌 중이 되어 다니느냐?”
했다. 길동이 대답했다.
“소자가 조선을 떠나 머리 깎고 중이 되어 지술(地術)을 배웠지요. 이제 부친을 위하여 좋은 터를 구했으니, 모친은 염려 마십시오.”
인형이 크게 기뻐하면서 말했다.
“너의 재주 기이한지라, 좋은 터를 구했다니 무슨 염려가 있으랴.”
다음날 길동이 운구하여 제 모친을 모시고 서강 강변에 이르니, 지휘해놓은 배가 기다리고 있었다. 배에 올라 화살같이 빨리 저어 한 곳에 다다르니, 여러 사람이 수십 척의 배를 대기시켜 놓고 있었다. 서로 반기며 호위하여 가니 그 광경이 대단하였다. 어언간 산 위에 다다르매, 인형이 자세히 본즉 산세가 웅장한지라, 길동의 지식을 못내 탄복하였다. 일을 마치고 함께 길동의 처소로 돌아오니, 백씨와 조씨가 시어머니와 시숙을 맞아 뵈옵는 한편, 인형과 춘랑은 못내 길동의 지식을 탄복하고, 또한 춘섬은 길동이 장성하였음을 칭찬하였다.
여러 날이 되자, 인형은 길동과 춘섬을 이별하면서 산소를 극진히 모시라 당부한 후, 산소에 하직하고 출발했다. 본국에 이르자, 모부인을 뵈옵고 전후 사실을 말씀 드리니, 부인이 신기하게 여겼다.

한편, 길동이 제사를 극진히 받들어 삼년상을 마치고 나서는, 모든 영웅을 모아 무예를 익히며 농업에 힘을 쓰니, 병사는 잘 조련되고 양식도 풍족했다. 남쪽에 율도국이라는 나라가 있었으니, 기름진 평야가 수천 리나 되어 실로 살기 좋은 나라라, 길동이 매양 마음 속으로 생각해 오던 바였다. 모든 사람을 불러 말하기를,
“내가 이제 율도국을 치고자 하니 그대들은 최선을 다하라.”
하고는 그날 진군을 하였다. 길동은 스스로 선봉장이 되고, 마숙으로 후군장을 삼아, 잘 훈련된 병사 오만을 거느리고 율도국 철봉산을 다다라 싸움을 걸었다. 율도국 태수 김현충이 난데없는 군사가 이름을 보고 크게 놀라, 왕에게 보고하는 한편 한 부대의 군사를 거느리고 내달아 싸웠다. 길동이 이를 맞아 싸워 한 번의 접전에 김현충을 베고 철봉을 얻어 백성을 달래어 위로하였다. 정철로 철봉을 지키게 하고, 대군을 지휘해 움직여 바로 도성을 치는데, 격서(檄書)를 율도국에 보냈으니, 그 내용은 이러하였다.
“의병장 홍길동은 글을 율도왕에게 부치나니, 대저 임금은 한 사람의 임금이 아니요, 천하 사람의 임금이라. 내 하늘의 명을 받아 병사를 일으켜 먼저 철봉을 파하고 물밀 듯 들어오고 있으니, 왕은 싸우고자 하거든 싸우고, 그렇지 않으면 일찍 항복하여 살기를 도모하라.”
왕이 다 보고 나서 소리쳐 말하기를,
“우리 나라가 철봉을 굳게 믿거늘, 이제 잃었으니 어찌 대항하랴.”
하고는, 모든 신하를 거느리고 항복했다.
길동이 성중에 들어가 백성을 달래어 안심시키고 왕위에 오른 후, 전의 율도왕으로 의령군을 봉했다. 마숙과 최철로 각각 좌의정과 우의정을 삼고, 나머지 여러 장수에게도 각각 벼슬을 내리니, 조정에 가득 찬 신하들이 만세를 불러 하례하였다. 왕이 나라를 다스린 지 삼년에 산에는 도적이 없고, 길에서는 떨어진 물건을 주워 가지지 않으니, 태평세계라고 할 만하였다. 왕이 백룡을 불러,
“내가 조선 성상께 표문(表文)을 올리려 하니, 경은 수고를 아끼지 말라.”
하고 당부를 했다. 그 후 길동은 표문과 편지를 홍씨 집안으로 부쳤다. 백룡이 조선에 도착하여 먼저 표문을 올리니, 임금이 표문을 보고 크게 칭찬해,
“홍길동은 진실로 기이한 인재로다.”
하고는, 홍인형을 위로 사신을 삼아 유서(諭書)를 내렸다. 인형이 임금의 은혜에 감사한 후 돌아와 모부인에게 임금과 이야기한 바를 말씀 드리니, 부인이 또한 가려 하였다. 인형이 마지 못해 부인을 모시고 출발하여 여러 날만에 율도국에 이르렀다. 왕이 맞이해 향안을 배설하고 유서를 받은 후 모부인과 인형을 환대하였다. 산소를 찾아본 후 대연을 베풀어 즐겼다. 여러 날이 되자 유씨가 홀연 병을 얻어 죽으매, 선능에 쌍장(雙葬)하였다. 인형이 왕을 하직하고 본국에 돌아와 임금까지 보고하니, 임금이 모친상 당했음을 위로하였다.
율도왕이 삼년상을 마치니, 대비도 이어 세상을 떠나 선능에 안장하고, 삼년상을 마쳤다. 왕이 삼자이녀를 낳으니, 장자와 차자는 백씨 소생이고, 삼자와 차녀는 조씨 소생이었다. 장자 현으로 세자를 봉하고 그 나머지는 다 군으로 봉하였다. 왕이 나라를 다스린 지 삼십년에 갑자기 병이 들어 별세하니 나이 72세였다. 왕비도 이어 죽으니 선능에 안장한 후, 세자가 즉위하여 대대로 이으면서 태평스럽게 살아 가더라.

-경판본 홍길동전을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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